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dache Jul 28. 2019

호박잎 쌈

비슷하지만 다른, 아직도 조금은 화난

여름이다. 식구들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불 앞에 서 있는 것이 힘든 계절이다. 무더위에 상 차리는 것에 꽤가 나서 한 번에 휙 굴소스에 볶아내는 볶음밥이나 인스턴트 냉면에 냉동만두로 한 끼를 때우고, 어제는 급기야 치킨을 배달시켰다. 이번 한 주 성의 없는 상차림을 반성하며 오늘은 제대로 된 저녁상을 차려주고 싶어 불 앞에서 땀을 흘렸다. 내가 좋아하는 가지를 볶고, 오이를 얇게 썰어 새우젓에 무치고, 돼지고기 목살을 고추장 양념에 재워 센 불에 바짝 익혀내고, 봄에 만들어 둔 마늘종과 곰취 장아찌도 보기 좋게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오늘의 주 메뉴인 호박잎 쌈과 강된장. 호박잎은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채반에 받혀 쪄내 베란다에서 기르는 푸성귀와 함께 내고, 강된장은 너무 짜지 않게 두부를 으깨 넣었다. 그래도 싱겁게 먹는 내 입맛에는 조금 짠 듯 한 강된장. 그러나 방금 한 뜨끈한 밥에 강된장 한 숟가락 얹어 호박잎에 싸 먹으니 땀 흘리며 밥상을 차린 수고로움이 강된장 짭조름함에 모두 상쇄되는 듯 만족스럽다. 이미 어른 입맛인 첫째는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입이 짧은 둘째도 강된장에 밥을 비벼 고기와 함께 잘 먹고, 회사 워크숍에서 돌아온 남편도 상차리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고 찬 맥주를 반주삼아 호박잎 쌈을 크게 싸 먹는다. 한 여름 무더위를 극복하고 드디어 마주한 여름 밥상.


그 여름 밥상을 차리기 위해 마트에 장을 보러 가 호박잎을 샀다. 여전히 돈 주고 사는 게 어색한 호박잎. 비닐에 포장된 호박잎을 마트에서 처음 봤을 때 참으로 어색했다. 가격표를 붙인 비닐봉지에 포장된 호박잎은 내가 아는 호박잎이 아닌 듯 생뚱맞았다. 내 유년의 여름날에는 호박잎은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었다. 담장 밑에, 밭 비탈에 초록의 까끌한 이파리 사이로 노란 호박꽃이 피고 그 주위에 벌들이 윙윙거렸다. 뜨거운 여름 해가 떨어지고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이 제집으로 돌아간 저녁, 뜸이 드는 밥 위에서 쪄진 호박잎이 된장과 함께 상에 올랐다. 설령 우리 집에 호박넝쿨이 없어도, "형님! 호박잎 좀 따 가네." "혜영아! 대문 쪽으로 있는 게 더 연하다. 그쪽에 있는 놈으로 따가거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웃에게 내주어도 하나도 아까울 것 없는, 그래서 마음껏 나눌 수 있었던 풍성한 이파리. 그것이 호박잎일진대 그 호박잎이 마트에 가격표를 붙이고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왠지 내가 알던 그 호박잎과는 다른 이파리처럼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제는 흙을 일궈 씨를 뿌려 호박을 기르지 않는 이상 가격표에 찍혀있는 돈을 주고 사 올 수밖에 없는 이파리를 보며 나는 무언가 많은 것이 지나갔고 이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쓸쓸함을 느꼈다. 어디에나 흐드러져 누구나 따 갈 수 있는 내 유년의 여름, 그 풍성한 이파리를 차려내고 싶었던 내 마음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소망이 되어버린 내 마음이 가여웠다.


"가여울 것도 많다. 그런 게 다 가엾게!!!" 때마침 타임세일을 알리는 요란한 마이크 소리에 깜짝 놀라 양념불고기를 십분 동안 싸게 판다는 외침이 나의 어설픈 감상에 핀잔을 주는 친정 엄마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서둘러 장 본 것들을 계산하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이 온통 습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어 숨이 막히는 오후의 더위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다. 찬 물을 한 잔 벌컥 들이키고 장 봐온 것을 정리하다 호박잎에서 손이 머문다. 아마도 마트의 그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던 것은 호박잎 쌈을 좋아하던 친정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무를 많이 넣어 끓인 된장에 호박잎을 쪄낸 엄마의 여름 밥상. 그 밥상에 둘러앉아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엄마가 해 준 밥을 먹던 나의 어린 시절. 그러나 그 어린 시절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이 다 좋지 않았다면서도 엄마 차려주던 그 밥상과 닮은 상을 어느새 차려내고 있다.


엄마는 목소리가 컸다. 목소리뿐 아니라 눈도 크고 이목구비 선도 굵고 덩치도 컸다. 이모들은 엄마가 처녀 적에 너무 약하고 말라서 바람이라도 세게 부는 날에는 바람에 넘어질까 외할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연약함과는 거리가 먼, 늘 힘이 센 엄마였다. 새벽에 일어나 큰 통에 이불을 이고 냇가에 가 이불 빨래를 하고, 할아버지 논에 모를 심을 때 열댓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해 리어카로 나르는 엄마였다.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벌려 놓은 일은 재빠르게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큰 목소리로 나를 혼냈다. 큰 눈을 부라리며 나의 사소한 잘못에도 호통치는 엄마였다. 없는 살림에도 자식들을 잘 키워내고자 하는 욕심이 컸고, 가난한 살림살이에 자식들이 무시당할까 언제나 우리 남매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우리가 그것을 지키기를 원했다. 게다가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칠 남매 맏며느리 노릇까지 해야 했던 엄마는 어린 우리 남매를 다정하게 대하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버지와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폭풍 같은 연애를 하고, 스물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 스물 하나에 아이 엄마가 되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올망졸망한 시동생 여섯을 책임져야 하는 남편의 옹색하고 수고로운 처지를 온전히 떠맡아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린 나는 엄마가 늘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었다.


엄마와 다정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쓸쓸한 마음이 든다. 친정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일요일 새벽 일찍, 아직도 개구리처럼 자고 있는 어린 남동생과 나를 깨워 동네 목욕탕에 데려간 엄마는 때수건으로 여린 피부를 아프게 밀었다. 아파서 움찔거리기라도 하면 으레 엄마의 큰 목소리가 탕 안을 울리며 가만히 있으라고 화를 냈다. 엄마와 함께 가는 목욕탕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냥 참아내야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울면 어디서 눈물바람이냐고 더 혼내던 엄마와 함께 했던 새벽의 목욕. 펄펄 오르는 더운 김을 보며 아파도 울지 못하고, 엄마가 다 씻어 줄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야 했던 어린아이는 그 서러운 기억을 안고 아직도 엄마에게 조금은 화가 나 있나 보다.


나는 엄마와 달리 친절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나를 친절한 엄마라고 말하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이 내 뜻대로 따라 주지 않고, 부모인 내가 보기에 못난 모습을 보일 때 나도 화가 난다. 왜 사람은 송아지처럼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일어나 걷고 젖을 빨고 저 혼자 알아서 못하는지 답답할 때가 있다. 자식을 낳는 순간 자동적으로 내 마음에 탑재되는 책임감이, 자식을 향한 애달픔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아마 나의 엄마도 그러했으리라. 그 엄마가 얼마간은 이해되고 또 얼마간은 이해되지 않는 내가 엄마의 밥상과 닮은 저녁상을 내 아이들에게 차려주는 오늘 저녁 식탁이다.

  

이전 15화 수국 풍성하게 핀 수돗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