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갓생러

네 번째 이야기

by 해다니

자취해 봤어? 나는 부모님 집을 떠나 자취해보고 싶은 자취 지망생이야. 원룸 구해서 나가면 되잖아?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이상하게 돈은 벌수록 쌓이는 게 아니고 없어지더라. 내 돈 다 어디 갔나 신고하려고 카드내역을 보면 내가 쓴 게 맞아. 1원까지도 몽땅 다 내가 쓴 돈이더라.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주변 사람들도 돈은 벌수록 없는 거고, 언제 돈이 모이냐는 내 질문에. 앞으로도 계속 없을 일만 남았다고 하더라. 그러니 엄마품을 여즉 떠나지 못하고 중학교 때 멋모르고 고른 핑크색벽지가 사방을 둘러싼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나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 같은 사람이 많으니까 '캥거루족'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된 거겠지. 흔히들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라고들 말하잖아. 나는 이 말에 너무 공감해. 이제 일을 쉬어간 지 어언 2년이 되어가는 동안 벌어 둔 돈은 다 썼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고는 있는데 1차 서류는 통과시켜 놓고 막상 면접 보러 가면 다들 이렇게 말하더라.

"경력은 많으신데, 저희가 돈을 많이 못 드려서요."

나는 돈 많이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곳에서 먼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야기하셨다. 이건 나를 뽑지 않겠다는 강력한 부정의 표시였겠지. 그렇게 나이무관, 성별무관, 경력무관에 지원 한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더라.

"나이가 많으시네요."

참나, 나이무관이라며. 신입으로 지원하겠다는데도 안되는 걸 보면 아, 내가 너무 과분한 곳들로 이력서를 넣고 있나 보구나. 이제는 집 근처 공장직 알바에 넣어봤는데. 여기서도 나를 안 받아줘. 나는 어디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거냐고요. 그나마 얼마 전에 운 좋게 물류공장에서 해외로 배송물건에 바코드 스캔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한 적 있었는데 그마저도 일감이 없다고 3일 만에 잘렸어. 이렇게 돈 벌 곳이 없는데 언제 돈을 모아서 집을 구하라는 건지. 나 스스로는 '취업 준비생', 남들이 보기에는 '백수'인 내가 집에 머물면 일 다녀온 부모님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지 알아? 나라에서는 우리들을 '쉬었음 청년'이라고 하더라. 나는 사회현상 덩어리 그 자체인가 봐. 캥거루에 쉬었음 청년에. 인생 참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정말 답이 없다.

신세한탄은 이 정도로 하고, 집에서도 눈치 보지 않는 반(?) 백수 생활을 유익하게 보내려면 몇 가지 수칙을 지켜야 하더라. 이것도 갓생 사는 친구가 알려줬어. 참 웃기지. 갓생 살고 있는 그 친구는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벌고 커리어도 좋을 거 같잖아? 근데, 걔도 쉬었음 청년 중에 하나야. 물론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쉬는 동안 새로운 직장에 맞는 국가 자격증에 도전하고 취득까지 했다는 점이겠지.

그 친구가 자격증을 따는 동안 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던 거 같더라. 막연하게, 그냥 그 일 하고 싶어!라고 하고, 일 관련된 것에 대해 하나도 알아보지 않았으니까.

다시 친구의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를 해보자면, 백수로 살아가기 위해서 몇 가지 단 3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1. 무더위에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을 틀지 말 것.

올해 여름 무척이나 더웠잖아. 솔직히 집에 생활비도 못 보태는 입장에서 비싼 전기료를 맘대로 쓰기에는 눈치가 보이니까 무더위쉼터로 대피를 하라는 거지. 나도 찾아보니 동네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센터가 있더라고. 이곳은 독서실과 도서관 그 사이 같은 느낌이야. 나는 이곳을 사무실이라고 불러. 무료로 장소도 제공해 주고, 커피와 다과도 있고. 영업시간도 길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야. 이런 곳이 전국적으로 꽤나 많이 있으니까. 한 번 찾아봐! 머무를 곳이 생겼으니, 그곳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야겠지.


2. 백수일수록 규칙적으로 살기.

사무실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이야. 그렇다고 직장 생활하듯이 빠듯하게 시간표를 짜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아침에 눈떠서 씻을 이유가 있고, 앉아서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고 알바자리도 알아보고. 아무래도 맨날 생활패턴 망가져서 살다가 갑자기 일하러 오세요! 하면 더 스트레스받을 수 있으니까. 아, 언어공부도 틈틈이 하면 좋고!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할 줄 아는 언어가 늘면 여행 가서도 소통을 수월하게 할 수 있잖아. 수능 준비하는 사람 처럼 하려면 흥미가 떨어질 수 있으니 그냥 여행 가서 쓰면 좋겠다. 싶은 정도로만 쉬엄쉬엄 해 봐. 좋더라.


3. 엄마 말을 잘 듣자.

흔히 말하는 집안일. 빨래, 거실정리, 청소, 분리수거 등등 상대적으로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귀차니즘에 빠지면 '나중에'의 덧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한 번 미루면 일 나갔다가 돌아오신 어머니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는 거야.

"너는...."

늘 너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집에 있는 애가 이런 것도 제대로 안 치우고. 밥 먹은 건 바로바로 설거지하고. 그리고 곧 장 결혼을 하지 못 한 이유가 집정리를 그때 그때 하지 않아서라고 말해. 아무리 그건 억지라고 이야기해 봐도 내 피부의 트러블도, 나의 아픔도, 하물며 돈을 못 버는 것조차 방을 치우지 않아서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 일 것이야. 이 것에 대해 갓생러친구에게 하소연하면

"너를 거둬주시고 있는 것은 부모님이니 그 모든 말이 맞다고 수긍하거라. 그 어떤 토도 달아서 안된다." 무조건 전지 전능하신 집주인님에게. 이 못난 딸내미를 거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엎드리라고 하잖아. 웃긴 건 그래도 양심상 부모님한테 용돈은 안 받고 있었는데, 갓생러 말처럼 하니까. 엄마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먼저 용돈 주더라. 소소 하게였지만 점심밥을 굶지 말라고 하면서.


그녀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날짜도 계절도 모르는 망가진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백수일수록 과로사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따라 오늘도 아침 7시 30분에 눈을 떠 씻고 밥을 먹었어. 책 한 권과 노트북을 챙겨 사무실에 나와서 하루 일과를 보내. 꼭, 찾아봐 주변에 이런 곳들이 분명 있을 거야. 없다면 도서관도 추천할게! 그럼 다음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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