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춤 추게 하는 사람

서툴러도 괜찮아, 그냥 '나'를 표현해.

by 해다니

나는 지독한 몸치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엄마 손에 이끌려 스포츠 댄스를 배우러 갔다.

그때 알았다.


남들은 쉽게 하는 동작들이 나에겐 기름칠 덜 된 로봇의 부품처럼 삐그덕 거렸다.


삐그덕-

몸은 굳어갔고,

점차 붉어지는 얼굴은 내 움직임을 더 주춤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는 재능

화려한 색채로 그림을 그리는 재능

엄청난 암기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재능

건반을 틀리지 않고 누르는 재능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재능

선율처럼 몸을 움직이는 재능


나에겐 없었다.


어딘가에서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려워졌다.


혹시 웃음거리가 되진 않을까?

조금만 주목받아도 몸이 얼어붙었다.


중학생이 되고,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학교 전통으로 내려오는 반 대항 단체 에어로빅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 반에는 몸치가 많았다.

쉬운 동작으로 대체된 덕분에,

우리 반은 2등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몸으로 리듬을 느끼는 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성인이 되어, '폴댄스'라는 화려한 운동에 도전했다.


봉에 매달리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근력으로 철봉에 달라붙어 손끝 하나하나 디테일을 살리고,

아련한 표정연기까지 해줘야 하는 종합 예술운동이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몸치였다.


그렇게, 몸을 맡기는 것은

흔적 기관처럼 점점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게 왔다.


그와 함께 있으면 천천히 흐르던 시간도

블랙홀에 빨려간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의 세상에 그를 넣고 싶었고,

그의 세상에 내가 들어가고 싶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움츠려든 어깨가 펴졌고,

나의 어설픈 몸짓마저

그는 따라 웃으며 흔들어줬다.


우리 둘만의 광란의 춤을 추며 무아지경으로 흔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

그게 춤 아니겠는가!


나에게 멋들어진 재능의 영역이 아닌,

그저 나의 흥을 표현하는 수단.


그를 만나기 전까진 몰랐다.

나를 이렇게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덕분에,

내 이상형 리스트에는 하나의 조건이 새겨졌다.


막춤을 추게 만드는 사람.


붉어진 얼굴에 시선을 두려워하던 나를 꺼내줬다.

오늘도 음악이 흐르면 고개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인다.


그와 함께라면,

그곳이 언제나 무대니까.

오늘도 우리의 서툰 언어로 밤새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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