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려고 하는 것

사람일까, 시절일까.

by 해다니

헤어진 지 6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그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잘 지내고 있다.


한때 그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시절이

너무나도 무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의 관계에 발전이 없을 것 같아

내가 먼저 그의 손을 놓고, 이별을 말했다.


어젯밤, 꿈속에 그가 나왔다.

그가 그립거나, 헤어짐에 아쉬움은 없었는데

무의식은 왜 그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았을까?


어제 정리하던 사진 때문이었을까.

10년을 함께한 연애는 많은 장면을 남겼다.


한강 둔치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던 앳된 커플.

같이 밥을 먹고, 손을 잡고

갈색 긴 머리를 흩날리며 쇼핑하던 그 소녀는 이제 없다.


함께 찍은 사진들을 지우고,

같이 모았던 작은 인형들을 정리했다.


내가 버리는 게 정말 사진과, 인형뿐일까.

그 사람 하나를 지우는 일이기만 할까.


10년, 나의 20대와 30대.

그 시절의 나를 지우는 일은 아닐까.


좋았던 마음도, 나빴던 마음도

서투르게 사랑하고,

작은 것에 울고 웃던 그 시절의 나.

무모해서, 그래서 더 낭만적이었던 나.


나는 지금, 그 사람과의 이별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와 이별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순간은, 모두 진심이었을 테니까.


더는 이어질 수 없었던 관계였지만,

미움은 남지 않았다.

남은 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작은 미안함 뿐이었다.


아마 그 꿈은.

무의식이 나를 조용히 쓰다듬어준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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