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달라야 했다.
10년 된 연애가 끝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스물한 살에 시작된 나의 연애는
서른의 문턱에 멈췄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끝을 맺은 건 나였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모든것을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던, 착한 사람이었다.
스물한 살.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사랑 하나면 다 된다고 믿었던 시절.
각박한 세상에서 아무조건없이 오롯이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던 그.
그에게 사랑이 뭐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 없이 말했다.
"너"
나를, 사랑 그 자체라고 불러주던 사람.
하지만,
그의 '사랑'은 점점 내 성장을 멈추게 만들고 있었다.
하루만에 직장을 뛰쳐나온 날에도
그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잘했어."
"불편하면 나오면 되는거지. 그들이 잘못했네."
그의 말은 늘 나를 편하게 해줬다.
그게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 사랑이
내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데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친구들과 감자탕을 먹었다.
친구들은 뼈를 깔끔하게 발라 먹고 있었고,
나는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깨달았다.
나는 감자탕도, 게장도, 삼계탕도
늘 그의 손을 거쳐야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공주처럼 대접받던 내가
어쩌면 세상을 모르는 아이였다는 걸.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나, 뭔가 바보가 된거 같아."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나빠? 내가 평생 다 해줄텐데."
그 때는 그 말이 왜 그리도 달콤했던건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스스로 갈비탕을 손질해 먹는다 말했을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그렇게 큰 거야? 그만 커. 내가 해줄게..."
그 순간,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나는 자랐고, 그는 멈춰 있었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사는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멈춰버린 시간이
나의 성장을 막고 있었다.
사랑은 보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성장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그에서 벗어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내가 놓은 건 사랑이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다시 붙든 일이었다.
가장 나를 사랑한다 말했던 사람조차
때로는 나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것이 '아낀다'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