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했지만, 사실은 부러웠다.

너무 가까이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

by 해다니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특이한 사람은

나의 오빠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오빠와 나는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없었다.


뭘 해도 느린 나와는 달리,

오빠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일단 실행하고 수습은 나중에.


수습이 미흡하던 시절엔 그 모든 걸 부모님이 감당해야 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오빠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사고뭉치처럼 보이던 오빠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뭐 저렇게 생각만 앞서서 제대로 되는 게 있을까?

오히려 독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거침없는 생각과 실행력이

지금의 오빠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질렀고,

그 후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값을 치렀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도착한 그곳에서 일을 하며 경비를 마련했다.


군대에 갈 때도, 그는 조용히 떠났다.

대학교 성적표에 학사경고를 받고

도망치듯이 입대한 거였지만,

군대에서 보내온 택배상자를 받고서야

우리 가족은 오빠가 군대에 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빠는 꽤나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우리 집 유전자에는 없는 유형.

부모님은 그를 '별종'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런 오빠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 살아서 뭐가 좋을까?

내 눈에 그는 매번 수습하느라 바쁜 삶으로만 보였다.

나중을 생각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만 남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가 나와 다른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는 날도 많았다.


나중을 생각하며 발목 잡힌 채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던 나와는 너무 달랐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소파에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 한 가지 있을 순 있겠다. 죽음.

그건 가만히 있어도 오더라."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고,

신체는 서서히 죽어가니까.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

윤리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말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존재야.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해."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자라다.'가 아니라 '죽어간다.'는 말이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내가 윤리 선생님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물론 오빠의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저 나이만 먹게 된다.

'그때라도 해볼걸.' 하고 후회하는 삶 보다,

'그때 그런 일도 했었지.'라고 돌아보는 삶이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멋대로 행동하는 오빠가 미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후회 없이 사는 그의 삶이 오히려 멋지게 보인다.

나는 계속, 나와 다른 그를 동경했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그를 통해 부러워했던 것 같다.


고작 나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오빠는

끊임없이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냈다.


지금이라도 나 역시,

움직이고 싶다.


나의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원하는 삶을 살아서,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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