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이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심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슈퍼에 홀로 갈 때면,
물건 하나 사는 것조차 얼굴이 터질 듯
빨개진 채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내 상황을 알아채주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 입학하고,
사회성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학기가 끝날쯤에야 친구들과 겨우 친해졌다.
물론, 학기가 끝날 쯤엔 방학을 했다.
겨우 관계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낯가림은 방학이라는 시간을 핑계삼아 다시 자라났다.
취직 후에는 생존을 위해 억지로 나의 기분을 끌어올렸다.
'나는 활달하고 호탕한 사람이다.'
회사 밖에선 절대로 하지 않을 내 모습.
생존을 위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반복했다.
억지로 표정을 짓고, 윗사람 지시에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직도
무슨 일이든 나서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일회성 만남에 강하다.
오늘 한 번 보고 끝날 사이라면,
1분 만에 그 사람과 절친이 될 수 있었다.
다만, 그날이 지나고 다시는 볼 일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가능했다.
지속적인 만남에 약했다.
그들이 나를 한 가지 이미지로 기억하는 게 싫었다.
한 번 각인된 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
오히려 나 자신도 낯설어질 만큼
어색한 말과 행동만 남았다.
왜, 그랬을까.
오늘 코발트블루 바다를 좋아한 사람도 나고,
내일 분홍색 꽃에 반할지도 모르는 사람도 나인데.
오늘은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일은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 사람.
기분 따라 다르고, 계절 따라 바뀌는 사람.
선택이 달라진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닌데.
이런 만남 외에 나에게 가장 힘든 존재는 친척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아니 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 사이에
나는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해야 하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그들을 미워할 수 있지만 멀어질 순 없었다.
이상한 사이였다.
이모부는 아직도 나를 초등학교 3학년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두 배가 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3학년 때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는 요만했지~ 조잘조잘 이러쿵저러쿵 ~"
기억은 멈췄는데, 사람은 자랐다.
자란 나를 마주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때의 나를 꺼내온다.
왜, 그날의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하시는 걸까.
친척.
어딘가 애매하고, 선을 그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거리감.
가까워서 더 조심스럽고,
멀다고 하기엔 끝없이 얽혀 있는 사이.
1회성 만남으로 생각하기엔 영원히 봐야 하고.
영원히 볼 사이라고 하기엔 언제 볼지 미지수이다.
가족이라 가까워야 하지만,
그렇기에 더 솔직해지기 어려운 사이.
그래서 더 멀게 느껴지는... 참 이상한 사이.
누군가는 가족만큼 편한 사람이 친척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내 안의 어색함은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