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잠, 죽어가던 삶

나를 꺼내온 작은 순간

by 해다니

깨어있던 시간보다, 잠들어 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


가끔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가보면 거리엔 봄이 한창이었다.

햇살은 따가웠고, 사람들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그 속에서 나만, 한겨울 외투를 입고 있었다.

시간에 뒤처진 듯한 기분에 결국 다시 돌아왔다.


대체 언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걸까.


가족들의 걱정과 한숨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나는 점점 방 안에 숨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단지 '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름 21살 때부터 회사에서 일했다.

10년 넘게 여러 회사를 거쳤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반복하며,

출퇴근길 버스에서 많이 지쳐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이대로 버스가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며칠 누워있기라도 한다면,

그땐 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하루빨리 지구 멸망이 찾아오길 바랬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말들이

이것도 버티지 못하는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SNS 속에는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왔다.

화려한 옷, 예쁜 얼굴, 멋진 화장법 이런 건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소신껏 행동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천장만 바라보는 나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걸까.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해가 떴는지 졌는지, 내가 샤워는 언제 했더라.


장마철에는 더욱더 길게 잠을 잤다.

눈떠있던 시간은 고작 4시간.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한 끼로 해결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어떤 날은 48시간을 내리 잔적도 있었다.


피곤하지 않아도 잠을 잤다.

그래야 목숨은 연명할 힘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12년 만에 친구 A에게 연락이 왔다.

12년 전의 나로만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A는 나에게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지?"


그 짧은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게, A는 덤덤하게 말했다.


"아직도 그 일 하고 있어?

너, 그때 진짜 반짝였어."


딱 그 한마디.

꽁꽁 묶여있던 마음이, 그 순간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A와 8시간이라는 긴 통화 끝에,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괜찮지 않은 나.'를 꺼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A는 내가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줬지만,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건 나 자신이었다.


그날의 산책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놓친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에.


그날 이후로 모든 게 기적처럼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그날 산책은 작은 시작이 되었다.

나를 돌아보게 되고, 잊고 있던 것들을 꺼내오게 되었다.


작은 말 한마디의 울림이 나를 깨워줬지만,

결국 발을 디딘 건 내 의지였다.


지금 나는 그날의 기억을 꺼내

조금씩 다시, 나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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