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취미였다는 그 말

성공하면 천재, 실패하면 백수

by 해다니

과연, 예술하는 사람은 모두 가난할까?

그렇다면 이 직업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일까?


한동안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많던 친구들이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는 한결같았다. 먹고살기 힘드니까, 그저 취미였으니까.


그런데, 이건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어느 날, 다른 나라의 예술가 지원제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사례가 궁금해졌다.

프랑스는 예술가들이 활동을 하지 않아도 실업급여 형태의 수당을 지원하고

국공립미술관, 극단,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활발하며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다.


독일은 예술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공공재라는 인식이 강하여

예술가에게 거주비 보조, 작업공간 지원, 예술활동 지원금을 지원한다.


캐나다는 공공기관에서 장학금, 프로젝트 지원금을 주고

분야별 펀딩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예술가 기본 소득 같은 개념의 제도와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 예술 비중이 높고, 공공프로젝트 참여기회가 많다.


그렇다면 그 외의 나라는?

성공여부는 시장반응에 좌우되며 자본주의 시스템 속 실패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물론 정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면 후원을 받거나 예술재단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예술가가 가난한 건 타고난 숙명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문제와 시스템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예체능에 항상 같이 묶여있는 체육은 스포츠는 점수, 순위, 메달 기록처럼 즉각적이고 객관적인 결과가 눈에 보인다. 반면, 예술의 평가는 주관적이고 아주 느리기에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는 확실한 것에 투자를 하게 된다.


올림픽은 국민적 이벤트고 메달 하나에 나라가 들썩인다.

그 들썩임에 가치를 두지만, 예술은 소수의 취향이기에 역시 외면받는다.


스포츠는 오랜 시간 '국가 경쟁력', '국위선양'의 도구였지만, 예술은 그저 자기표현과 내면을 다루는 개인영역이기에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왜 도움이 필요해? 취미잖아."라는 인식이 강하다.


성과중심의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예술도 성공하면 스포츠처럼 환호받는다.

단지 그 과정의 불확실성을 사회는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성공하면 천재, 실패하면 백수.


나라에서 예술을 공공가치로 볼 것인가, 사적인 재능 소비로 볼 것인가.

그것이 예술가라는 직업에 삶을 달리 할 수 있다.


예술은 마음을 회복시키는 국력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회복, 상상, 위로를 만든다.


한 자루의 총보다, 하나의 문장이 누군가의 정체성을, 기억을, 시대의 흔적을 만든다.


예술가에게도 응원은 필요하다.

단지 박수만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그들이 갖은 재능을 모두 쏟아 낼 수 있게 해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재능 있던 그들이 떠나가고, 나만 남았다. 물론 나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의 부러움과 걱정이 내 앞에 놓일 때마다 나는 등을 돌려 외로워진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저 취미의 성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숨결이 담겼을지 모르는 예술이다.

그들도 하나의 국가대표임을 알아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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