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을 창의력으로
서울의 한 카페에 앉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다소 심도 깊은 이야기와
농담 섞인 진담들이 오갔다.
어떤 단어를 말하려고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순간, 음절도 비슷하지 않은 내 말이
그의 귀에는 '강원도'로 들렸던 걸까?
"강원도?" 그는 나에게 되물었고,
"강원도?" 나도 웃으며 되물었다.
그렇게 얼토당토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눈을 떠보니 어느새 강원도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늘 이렇게 나를 상상도 못 한 세계로 이끌어줬다.
내가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즉흥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일 중에는
갑자기 시간도 돈도 생기면 당일에 가장 빠른 항공권을 끊어 떠나는 여행.
내 버킷리스트 중에 있었지만,
살면서 절대 불가능 한 일이라고 믿어왔다.
내 손에 당일 항공권은 없지만, 우리에겐 차가 있었고,
나에겐 여행을 떠날 돈은 없었지만, 우리에겐 한도초과한 낭만이 있었다.
우린 그렇게 차에 몸을 싣고, 3시간을 달려 강원도 속초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서 간단하게 챙겨 온 물건들로 우리는 차박을 준비했다.
뒷좌석을 접었고, 침낭을 깔았다.
덮으려고 챙겨 온 침낭은 더위속에서 우리의 등을 지켜줄 얇은 바닥이 되었지만,
너무 얇은 탓에 그렇게 효과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끝없이 이야기했다.
누군가 무더위에 찍어 놓은 환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는 나를 그 환상 속 출연자로 만들어주었다.
속초의 초여름 밤은 더웠고, 바닷바람은 눅눅했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만 선선했다.
없는 살림들로 꾸린 작은 공간 속에
우리는 서로의 몸을 그 공간에 꾸겨넣었다.
낭만의 조건은 무모함과 체력,
그리고 가난함을 이겨낼 상상력.
부족한 것들이 눈에 들어와도 괜찮았다.
우린 대체할 것들을 창의적으로 찾아냈고,
그걸 실행에 옮길 무모함도 있었다.
"아, 이 부분이 조금 아쉬운데?"
"아! 이걸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좋은데? 괜찮은데?"
우린 서로에게 무한한 긍정이 있었다.
... 체력, 이 부분은 조금 문제지만.
하루쯤 내일의 체력을 빌려 쓴다고 큰일이 나지 않겠지.
뭐,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욕하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밤을 달려온 그 길도, 무모한 상상력도, 1열에서 바라본 일출도.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이 순간의 기억으로
나는 또다시
이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얻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