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면 앞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

by 해다니

오늘은 한 줄을 써 내려가는 것이 버거웠다.


언제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들은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어 할까?


돈 잘 버는 법.

돈 많은 백수가 되는 법.

로또 당첨되는 법.

순간이동 하는 법.

마법학교 입학하는 법.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남이 나를 사랑하게 하는 법.


이 중 하나쯤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위 보기에서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딱히 없었다.


돈 잘 버는 법?

열심히 일하는 소득으로, 요즘의 물가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돈 많은 백수가 되는 법.

'돈 많은'과 '백수'를 따로 떼어놓으면, 후자는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로또 당첨되는 법?

그건 조상신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


순간이동 하는 법?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제일 먼저 써먹었을 거다.


마법학교 입학하는 법?

해리포터를 열심히 보고 바로 잠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나조차도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남이 나를 사랑하게 하는 법?

이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면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했다.


이렇게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기에

오늘도 나는 자리에 앉아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것은 화면이고,

검은 것은 글씨인데


반짝이는 커서의 깜빡임 만큼,

나의 고민의 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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