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까지 외주 주는 시대

내 질문에 답변자는 누구일까?

by 해다니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듣는 음악이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리즘의 발달 덕분에

비슷한 음악만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게 싫어졌다.

그래서 나의 음악 세계를 넓히고, 공유하기 위해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스토리가 이어지는 음악.

가사 없는 음악.

한 가지 주제에 맞춰진 음악들.


여름을 맞이하여, 청량한 요즘 노래 말고 25년 전 청량곡 대해 만들어 보려는데

막상 떠오르는 곡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들에게 물었다.


"청량한 분위기, 이런 느낌에 노래 뭐 있었지?"

친구들에게 키워드와 이런 종류의 비슷한 음악이라고 예시를 던져주고 질문했다.


네 명의 친구에게 물었고,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네 명모두 알고 있던 노래를 알려주는 대신,

AI에게 내가 던진 질문을 그대로 복사해 재질문했고, 그 답변을 캡처해서 보내준 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의견을 쉽게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둘째, 정확하고 확실한 정확한 답변을 주고 싶었던 거겠지.


현대인의 고질병 선택장애가 생기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싫어하거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내 주장으로 갈등이 생기는 걸 두려워했고, 그래서 늘 의견을 남에게 미뤘다.

그래서 선택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내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면 어쩌지? 그 걱정이 앞섰다.


또한, 같은 노래를 듣더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줄 수 있기에, 더 확실하고 보편적인 답변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들도 그랬던 것일까?

"왜 너의 생각이 아닌 ai의 답변을 가져왔어"

내 물음에, 친구들은

"회사업무 중에 네 질문까지 깊게 생각해 낼 여력이 없었어."


그때 깨달았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사람이었고,

내가 질문한 그들은 낭만보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각해 낼 힘조차 ai에게 의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질문한 상대들은 30대 중반의 여성들이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같이 ai의 답변이었다.


내가 들은 답변은

과연 누구의 답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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