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질까?

어떤 상황이 와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by 해다니

나는 이목이 집중되면 발끝에서부터 두피까지 빨갛게 달아오는 사람이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소심했던 아이로 기억되는 거 보면

아마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거나, 곤란한 질문이나 부탁이 나에게 향하면 내 몸은 어김없이 온몸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학창 시절이 조금 힘들었다.

손들고 하는 질문시간도, 조별과제 발표도, 누군가에게 고백받는 상황도 싫었다.


옛날에 <미스 홍당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내가 딱 그러했다.


사람들이 가끔 놀리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은, '거짓말 못하고 투명한 사람'이라고 받아 들기 시작했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일시적으로 나아지기도 했었다.


사주에는 여러 가지 살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그중 망신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의 사주에는 좋고 나쁨이 공존하는 아주 평범한 운명을 타고났는데

'망신살'이 나에게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나의 이런 성격도 망신살 때문은 아닐까?

망실살인란?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망신을 당하는 운'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와 똑같은 실수를 해도 혼자 더 자책을 많이 했다.

집에 가서 이불킥을 하고, 꿈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반면 친구는 달랐다.

그것을 그저 '우와! 나 이런 일도 겪었어!' 하고 웃으며 넘겼다.

오히려 좋은 에피소드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부끄러움도 망신살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예전에 역술가 선생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망신살이라는 게 정말,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그런 건가요?"

"목욕탕에 가서 벗은 몸을 보여주면 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때, 그 말을 들었던 선생님은 웃으며 말해주었다.


"망신살이라는 건 단순히 망신을 당한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망신스러운 일은 있습니다.

차이는, 그 상황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냐예요."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웃어넘기고,

어떤 사람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긴다.


망신살이란,

그저 내면이 여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의 성향일 뿐이었다.


결국, 지옥을 만드는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물론, 그렇게 안다고 해서 다음 또 부끄러운 상황이 오면

내 얼굴이 붉어지는 걸 막을 순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지."


이게 나인 것을 인정하고

웃고 넘겨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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