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시작을 잊지 않기.

by 해다니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와 밥을 먹으며 나누던 헛소리가 나에게는 꽤나 괜찮은 이야기의 씨앗으로 다가왔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주제였다.


키워드 나열해 보자면

외계인, 요리사, 재판.

주제는 처음엔 간단하고 명확했다.


하지만 이야기에 재미를 넣고,

흥미요소를 덧붙이다 보니 점점 본래 주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 의견들이 또 덧붙여졌다.

의견을 들을 때는 그 나름대로 이유도 있었고, 괜찮은 요소들이었다.


이야기는 점점 부풀어 올라 어느새 원래 가지고 있던 알맹이는 사라지고

처음의 주제조차 흐릿해졌다.


어느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처음에 내가 쓰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이야기가 장황해지자 흥미도 식어갔다.


잔가지가 많아지면,

쓰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되어간다.


시작은 간결하게,

생각은 짧게.


참고자료는 많을수록 좋지만,

알면 알수록 제약도 많아진다.

소설이 더 이상 이야기르 읽히지 않고,

그저 지루한 설명이 되어버리는 순간.


나는 안다.

이렇게 경로를 이탈한 이야기들은

결국 휴지통 옆 작은 폴더에 남겨진다.


지워지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이야기들.


그래서 잔가지를 쳐내야 한다.

가지를 치지 않으면 열매는 자라지 않는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비워야 찾을 수 있다.

나는 내려놓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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