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와 호구사이

착한 아이는 좋은 어른이 되었을까?

by 해다니

무사고 10년 운전 경력에 교통사고가 났다.

새벽시간 점멸신호가 켜진 사거리에서 사고는 발생했다.

나는 직진을 하고 있었고, 상대차는 좌회전을 하다가 내 차를 박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남의 차를 타거나, 하물며 택시를 타고서도

나본적 없던 상황이라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보험사부터 부르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보험사를 부르고, 그제야 밖에 나가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대방은 나에게 자신의 차 상황을 보여줬고,

내 차의 이 부분인 것 같다며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리에 비해서 너무 작은 스크레치였다.


'고작 이 정도에 그렇게 큰 소리가 났다고? 이상한데.'

너무 어두웠고, 상대방이 플래시까지 비춰주며 이야기하니까, 괜히 보험사를 불렀나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 차주도 나에게 왜 상황 파악도 안 하고, 보험사부터 불렀냐며 나를 다그쳤다.


내가 일을 갑자기 너무 키운 건가,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후, 보험사 직원이 도착했고, 내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상대차가 주장하던 문쪽에 스크레치가 아니라

뒷바퀴를 쳐서 휠이 망가져있었다.


스크레치면 그냥 차를 가지고 가도 되지만, 휠을 쳤다는 것은 바퀴 조정이 빗나갔을 수도 있기에

고속도로를 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넌 진짜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심하다."

순간 그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동조되고, 내 탓 같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사고 이후, 한참을 잠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귀에 딱지가 박히게 들었던 이야기.

공부는 못해도 된다. 그저 착하게만 자라달라고

어디에 가서도 착해야 한다, 착한 게 굴어라.

누구에게도 한점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지 말아라.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변 어른들도 늘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물론, 오빠가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더 나에게 강요하셨던 부분이었다.


과연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강요하던 그 착한 아이여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심부름 잘하고, 배려하는 아이.


이 세상은 온실이 아닌데,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늘 남에게 맞춰진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혹여나 내가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을까 걱정한다.

'내가 손해 보는 편이 괜찮을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손해 보는 쪽을 택한다.


누군가 화를 내면 어쩔 줄 모르고, 정신적으로 대처가 힘들어진다.

상대방의 요청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죄책감이 들고

의사결정도 늘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도 나의 상처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착한 자녀가 정말 좋은 사람일까.

착하다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 착함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동안 큰 일 없이 지내온 게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자꾸만 검열을 한다.


그래도 예전에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거절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거절을 하면서도 어떻게 서든 그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게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지만


이렇게 다른 것들도 하나씩 치워내며, 나의 시선으로 오로지 나로서 살 수 있겠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자라서 과연 내가 얻은 이점은 뭐였을까?

이 세상에서 홀로 착하다면 그거야 말로 돌연변이는 아닐까.

손해 보고 살고 싶지 않다.


착한 아이.

그건,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기대였다.

더는 호구처럼 살고 싶지 않다.

착한 아이로 살았지만, 정착 착한 어른이 되는 길은 없었다.


지금 이 시대, 착한 아이는 결국

'좋은 사람'과 '호구'는 한 끗 차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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