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았기에 어려워졌다.
나는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딱히 그럴 기회도 없었다.
남들 한 번씩 다 해본다는 기숙사 생활도 엄마의 걱정으로
버스를 타고 40분, 지하철 타고 45분 환승해서 또 14분, 역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학교를 매일 다녀야 했다.
아마, 이때 체력을 긁어모아서 지금 내 체력이 방전된 거 아닐지 의심이 든다.
취업으로 인하여 자취도 해본 적이 없고, 친척집에서 맡겨지거나 할머니댁에서 살아 본 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
"네가 엄마 껌딱지였잖아. 조금만 떨어져도 얼마나 울었나 몰라."
그래서였을까.
독립적인 오빠와 달리, 나는 혼자 살아가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귀촌을 하게 되면서, 엄마와 아빠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각자 흩어져서 살아가면서 연락이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인 집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사무실에서 글을 쓰다 보면 3시 40분쯤 되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엄마가 퇴근하고 오는 시간. 엄마는 점심을 일찍 먹기 때문에 4시부터 저녁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없으면 굶거나 밥에 김치만 놓고 대충 먹는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왜? 왜 혼자 먹으면 계속 그렇게 간소하게 먹어?"
그럼 엄마는 내 핑계를 댄다.
"너도 없는데 혼자 뭐 그렇게 차려, 번잡스럽게. 네가 일찍 들어오던가."
그러고는 엄마는 유일한 취미인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본다. 그것이 하루일과의 끝.
어쩐지 취미생활도 없는 엄마의 모습이 고독하게 보였다.
회사 생활을 했을 무렵에는 집에 오면 7시가 넘었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요즘 들어 마음에 걸린다.
엄마는 "시집가서 이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지만,
막상 내가 없으면 이 집에 홀로 남게 되는 건 엄마였다.
물론, 아빠가 있는 시골로 내려가도 되지만, 엄마의 건강 문제로 병원 하나 없는 시골보다는 지금 생활이 더 나은 것은 사실이었다.
내게 깊은 효심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이것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일까.
엄마의 식사와 여기저기 쑤신 통증이야기가 마음에 쓰인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일자리가 많은 곳은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이상이 거리인데, 과거 출퇴근 중 기절한 적이 세 번이나 있어서 붐비는 시간대의 대중교통이 두려워졌다.
현실적으로 혼자 나가서 살아가는 게 나에게 더 맞는 길이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걱정이 나를 붙잡는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범죄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의 레이더는 비상이 걸린다.
놀다가 전화라도 안 받으면 화부터 낸다.
"걱정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걸까, 엄마가 나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걸까.
가끔은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좀 더 빨리 독립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이건 효심일까, 책임감일까, 아니면 관계 중독일까.
부모와 자식의 유대는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부담일까.
나는 아직 그 경계를 잘 모르겠다.
시기를 놓친 독립은 꽤나 어려웠다.
차라리 몰랐으면 오히려 쉬웠을 독립이었다.
*관계중독 : 서로의 보살핌을 주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