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3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by 해다니

첫 번째 취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닌 파견직.


아, 어쨌든 2년 동안 계약된 목숨이니 계약직이라고 하는 것도 맞으려나.


당시, 화제성이 높은 프로그램이 몰려 있던 방송국 예능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프로그램은 5개 정도였고, 하는 일은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살면서 처음 봤다는 것이다. 나는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택했고, 문과 중에서도 문예창작을 택한 사람이었는데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써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사무보조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여자들이었다. 채용담당자가 아무래도 어린 여자애들이 다루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면접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사람들은 5명. 사실 이 자리가 처음부터 원하던 자리도 아니었다. 파견회사에서 내가 이력서를 넣은 곳보다 이틀 빨리 진행되는 면접이 있는데, 그곳에도 면접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에서 가게 된 것이었다.


"00 씨, 00 부서에 면접 보기로 하셨잖아요. 떨리기도 하실 텐데, 예능국에서도 사람을 뽑고 있거든요. 혹시, 그곳에서 면접 연습이라도 해보실래요?"

"그렇게 할게요."


면접 연습을 하러 간 곳이었기에 나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아무렇게나 대답을 했다. 면접관이 던진 마지막 공통 질문이었다.


"만약, 상관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부당하게 시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대부분 대답에 뜸을 들이며, 정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너무나도 뻔하지 않는가.


"그래도 해야죠."


이상하게도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나에게까지 그 뻔한 공통 질문이 오지 않았다.


"면접은 이 정도고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실까요?"

"저, 혹시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까요?"

"비키니만 아니면 됩니다. 자율복장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면접장에서 질문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복장규정에 대해 질문한 내가 합격을 했다.


면접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순간에도 나는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잘 볼 이유도 없었고 간절함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합격소식이라니. 이유는 분명했다. 그저, 오늘 본 면접자들 중 어렸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일하게 된 방송국에서 같이 일하는 파견직은 나를 포함한 10명. 각각 다른 회사에서 파견되었기에 유대감도 없었다. 유독 처음부터 나를 미워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친구도 나와 같은 날 면접을 봤지만 떨어졌다는 것. 내정자처럼 다 말해뒀었는데 떨어졌으니 나를 미워할 만했다.


10명의 사람 중 1명이 그만둬서 뽑는 자리가 아니라, 9명이서 하기에 벅찼기에 1명을 추가 채용한 자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남는 프로그램들을 받아와야 했고, 나에게 일을 알려줄 사수는 6명이었다. 나머지 셋은 예능국 사무국 소속이었기에 직접적인 업무 교류는 없었다.


"00 씨한테, 이 부분 인수인계 다 해줬으니까. 또 물어보면 알려주지 마세요."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한번 배운 걸 어떻게 알라는 것일까.

인수인계 기간은 4일이었고, 배워야 할 일들은 많았다. 각 프로그램별로 해야 할 일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프로그램은 현금 사용이 많았고, 어떤 프로그램은 카드사용이 많았다. 또 어떤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많아서 하나하나 등록해야 했고, 또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좀 더 까다로웠다.


지금이야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걸 전산 처리한 뒤 출력해 그 출력물을 가지고 담당 pd에게 결재를 받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본인의 자리 근처에 있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움직일 일이 잘 없었지만, 나는 늘 셔틀버스를 타고 별관을 가야 한다거나 6층에서 지하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프로그램뿐이었다. 처음에는 이동하는 일들이 귀찮게 느껴졌지만 잦은 이동 탓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도 핑곗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세 달 정도였을까? 직장인들에게 오는 3,6,9 증후군.

입사 후 3년 차 6년 차 9년 차 또는 3개월 6개월 9개월마다 때려치우고 싶어 하는 증후군.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3개월. 남자친구는 군대에 갔고, 내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때려치울까? 하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점점 일이 손에 익어가고, 나를 적대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를 가장 미워하던 언니가 퇴사를 했고, 새로운 신입이 들어왔다.


2년이라는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한, 영원한 무리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 같았다. 이 무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 나는 그렇게 이곳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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