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4

어린 날의 미숙함.

by 해다니

이제 일에 대해 체계가 머릿속에 잡혀가고, 사람들이 익숙해질 때쯤 한 번에 물갈이가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계약직의 숙명이었다. 물론 일보다 사람 상대하는 게 힘들었던 나에게는 최고의 기회였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무리가 한 달의 텀을 가지고 한 명씩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그들과 나는 비슷한 또래였기에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나만의 무리가 생기면서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있는지 알게 되었다.


"00아, 너 A언니 알아?"

"A?"


그 A는 나의 대학친구 이름이었다.


"네가 A를 어떻게 알아? 그리고 걔가 왜 언니야?"

"고등학교 때까지 그 언니랑 같은 교회 다녔어."

"세상 진짜 좁다. 나는 걔랑 대학 친구야."


내가 빠른 년생이기에 족보브레이커였다. 나의 동년배와도 친구였고, 나보다 한 살 많은 사람들과도 친구였기에 조금은 이상한 족보가 완성되었지만 아무튼 세상은 정말 좁다고 느꼈다. A라는 친구 덕분에 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금방 친해질 수도 있었기에 여러 사람과 적을 만들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월급은 정말 코딱지 만했다. 첫 월급이 세후 90만 원으로 시작했고, 11월에 입사해 1월이 되자 오른 금액이 105만 원 그리고 입사 1년 차가 되었을 때, 110만 원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리도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고 살았나 싶지만 이 당시 시급이 그러했다.

이 귀여운 금액을 쪼개서 생활비로 쓰고, 그 금액을 또 나눠 적금을 넣고 청약통장까지도 만들었다.


업무가 손에 익어가고, 친한 사람들이 생겨나자 나의 업무태도는 불량해졌다. 그 당시 덕질하던 친구를 음악프로그램 사전녹화에 넣어주었고, 음악방송 pd님에게 부탁해 아이돌들을 찾아가 사인도 받았다. 어찌 보면 나의 자리를 잘 이용한 것이고, 어찌 보면 약간의 권력남용이었다. 나에게 권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분과시 정도로 표현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지금도 철없이 행동한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 주셨던 pd 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00아, 너 자리 비우고 어디가 있었어. 한 시간씩이나?"

"아, 00 프로그램 때문에 별관에 다녀오느라, 자리 비웠습니다. 셔틀버스도 놓치고 pd님이랑 엇갈리는 바람에 거기서 좀 기다렸어요."

"너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 또 그랬다고?"

"네, 다음번에는 좀 더 빨리 다녀올게요."


불량한 태도는 금방 소문이 났고, 나의 행동은 오래가지 않아 사무국 귀에도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내 잘못이기에 그 당시 들었던 잔소리들은 당연히 들어야 했던 것이 맞았다. 나는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목숨이었기에 그들에게 더 잘 보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참 어렸고, 철없었다. 그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싶기도 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땐 몰랐지만, 기회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오기도 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올 때쯤 나의 다음 직장을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몇 있었다.


"00 씨, 얼마 뒤에 계약 만료라면서 다음 일자리는 정했어?"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00 씨 전공이 뭐였는데? 원래 전공이 이런 행정관리 쪽이야?"

"아니요. 저 문예창작전공했어요."

"글은 쓰고 있어?"

"지금은 안 쓰고 있어요."

"그래? 그러면 그동안 쓴 글 가져와봐. 읽어보고 내가 아는 드라마국 작가한테 소개해줄게. 드라마 막내작가도 괜찮잖아?"


cp님은 내 전공을 듣고, 드라마 막내작가 자리를 제안해 주신다거나,


"00 씨, 여기 어차피 블라인드로 시험 보니까 한번 방송국 들어와 봐. 일 재밌을 거야."


진심으로 철없는 나를 걱정해서 진지한 조언을 해주신 선배님들이나, 또 재계약은 절대 없다던 그곳에서 일을 열심히 하던 다른 행정직은 팀을 꾸려서 나갈 때 정규직 조건으로 데려가기도 했었다. 그러니 어디에서도 행실을 바르게 한다면 좋은 기회는 분명히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 방송국 안에서 울고 웃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30일 치의 편지를 들고 찾아온 사건, 이모의 친구분들까지 나에게 방청권을 구해달라고 한다거나, 사무국에서 쥐포구이를 먹겠다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다가 연기가 감당 못할 정도로 발생한다거나, 예능국 체육대회에서 가위바위보 대결로 100만 원 상금을 받는다거나 어찌 보면 그 안에서 딱 덜 자란 여고생들처럼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 안에서 배운 건,

세금계산서, 법인카드, 현금영수증 전산처리가 아닌 사람과 어울리는 법. 나는 그걸 가장 많이 배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취업일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