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했던 사람
창문도 보이지 않는 구석진 자리.
내 눈에 보이는 건 멕시코스타일 그림이 그려진 벽과 40대 중반의 사장뿐이었다.
사장은 의자보다 낮은 테이블에 놓인 김치볶음밥에 코를 박고 먹었다. 그의 행색만 보고 있으면 일주일은 굶은 듯한 게걸스러움이었다. 혼자 저렇게 먹을 거면 마른안주라도 시켜주던가 빈 속에 맥주를 때려 넣으라는 건지 내 술잔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테이블 위에 고여갔다.
술 한 모금을 마시던 사장이 내 잔을 바라봤다.
"짠, 할까?"
사장은 내게 잔을 들어 잔을 부딪히기를 권했다.
"아, 아니요. 저 이따가 약속이 있어서 술은 좀 그런데..."
"00 씨, 정말이지 이럴 거야? 흥 깨는 게 취미야? 내가 뭐 잡아먹어? 아니면 사람을 원래 잘 못 믿는 편인가? 나 사장이야. 사장. 00 씨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라고."
마지못해 나의 손에 맥주잔이 들렸고, 잔을 부딪히자 그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여기 한 잔 더! 날이 더워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술술 들어가네."
나는 안절부절거리며 핸드폰 진동에 온신경이 빼앗겨 있었다.
[어디야?]
[어디냐고, 나 지금 강남으로 넘어간다?]
[나, 강남 도착했어. 어디서 만나?]
[왜, 확인을 안 해?]
남자친구에게 보낸 나의 마지막 연락 때문에 남자친구가 조급해하고 있었다.
[나, 지금 강남 가는 길이야. 사장이 이 서류만 전달해주고 나면 퇴근이래! 약속시간 보다 금방 만날 수 있겠다. 터미널에서 약속장소로 같이 넘어가자.]
만나지 못한 조급 함이었을까, 불안함에 화가 난 거였을까, 연락되지 않는 나를 걱정한 것이었을까. 진동은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핸드폰을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사장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장황하게 떠들어댄 이야기들을 요약하면 '나 잘났다.'이 네 글자로 함축할 수 있었다. 사장은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에서 인기가 많았고, 여자를 골라서 사귀었다고. 대학시절에는 블라블라를 전공했고, 군대에 가서는 탱크를 몰았다고. 자기는 최소 16살 연하의 여성들만 만나왔다고 했다.
아,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나는 그저 염소웃음소리를 냈다.
"아하하하하. 네. 그러셨구나."
내가 반응해 주면 그는 더 신나서 이야기보따리를 꺼냈다. 그저 외로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지이잉-' 문자로만 오던 진동이 전화로 바뀌어갔다.
핸드폰을 바라보니, 6시가 넘어간 시간이었다. 사장은 쉬지 않고 5시간을 내 앞에서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불편함에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던 터라 시간에 대한 판단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저 6시가 넘어서 이만 퇴근해 봐도 될까요?"
"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고? 00 씨랑 있으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 아 잠깐만 잠깐만 나 화장실만 다녀오고."
사장은 자리를 비웠고, 나는 다급히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몰라, 여기가 어딘지."
"아직도 사장이랑 같이 있어? 회사야? 왜 연락이 안 된 건데?"
"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지. 일단 지금은 술집인 거 같은데 사장이 화장실만 다녀오고 퇴근해도 된다고 그랬어. 그래서 너는 지금 어딘데?"
"술집? 왜 술집이야? 나, 강남역에 있어."
"알았어, 내가 그리로 갈게."
그는 해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나는 사장이 오는 발소리에 전화를 끊었다. 그는 화장실을 다녀와 자신의 자리가 아닌 내 옆자리에 앉았다. 휘청이는 척 내 어깨를 만졌다. 불쾌한 표정으로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대충 손을 흔들며, 자신은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난 괜찮아. 그냥 좀 술 먹어서 그래. 어휴 그런데 어깨가 왜 이렇게 뭉쳤어. 긴장했어?"
그는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축축한 그의 손이 더럽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비틀며 그의 손을 피했다.
술에 취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일까, 아니면 이 시간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준 게 내가 그에게 호감이 있다고 오해한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것이 불쾌하고 역겨웠다.
"저, 퇴근시간이기도 하고 집에서 계속 연락이 와서 이만 집에 가봐도 될까요?"
"지금부터는 야근이지.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인 거 알지?"
"네?"
그는 내가 나가야 할 길을 막고, 술을 주문했다.
"아까, 가봐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00 씨도 봐서 알지, 오늘 직원 하나 그만뒀잖아. 내가 힘들어서 그래. 요즘애들은 뭐 이렇게 참을성도 없고, 일도 힘들고, 하... 한잔만 딱 한잔만 마지막잔."
"술 취하신 거 같은데."
"안 취했어. 아까 내가 한 이야기 어디로 들은 거야. 내가 말이지 고등학생 때부터 술을 마셔서 말술이야 말술. 내가 다음 주에 제주도 출장을 가거든? 00 씨 제주도 가봤나? 아직 어려서 국내여행 많이 못 다녀봤지? 다음 주 출장 같이 가자. 내가 화끈하게 쏜다. 내가 00 씨 맘에 들어서 그러는 거야."
다시 한번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에 전화가 오자 사장은 나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
"아, 정말 사장이 이야기하는데 예의 없이 왜 자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거야. 딱 한잔만 더 할 동안만 핸드폰 압수야. 압수. 그래서 00 씨는 꿈이 뭐였어?"
"네?"
"00 씨, 꿈이 없어? 막내 작가로 들어온 거면 방송국 작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 작가 업계라는 게 엄청 좁아. 방송업계, 작가업계 그거 다 내 손바닥 안이야. 여기서 소문 안 좋게 나잖아? 바로 아웃이야. 아웃. 아웃당하고 싶어? 시작도 못하고 그만둬 볼래? 지금 하는 프로그램, 그 잘 나가는 000 프로그램 거기 pd가 다 내 친구야."
와, 드라마에서 보던 이야기를 실제로 들어 볼 날이 올 줄이야.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협박멘트라니. 어쩌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한테만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그런데 또 어린 시절의 나는 그걸 또 믿고야 말았다.
"00아, 아카데미 가야 한다니까. 여기 다 인맥장사라는데 가서 인맥 만들어야 들어갈 수 있데."
같이 아카데미에 가자도 했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맥으로만 움직이는 시장이다.
사장이 했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맥, 결국 업계가 좁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 반 밖에 줄어들지 않은 내 술잔. 그리고 사장이 추가한 새로운 술잔. 그저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00 씨 왜 이렇게 술을 못 마셔? 학생 때 술 좀 안 먹어봤나? 한 잔 시킨 건 다 마셔야 할거 아니야. 아깝게. 00 씨 돈 아니라고 이렇게 남기고 그러면 쓰나. 얼른 마셔."
사장은 점점 나를 강압적으로 대하려고 했다.
"저, 저도 화장실 좀."
화장실을 핑계 삼아 자리를 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하자 식당 안 풍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가득 차 있었고, 창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오른쪽 천장에 달려있는 tv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아, 오늘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이었구나. 축구였을까, 야구였을까. 어떤 스포츠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술은 반 잔도 먹지 않았는데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머리가 지끈 거려왔다. 화장실 가는 길에 만난 식당 직원에게 시간을 물었다.
"저, 혹시 지금 시간이 몇 시일까요?"
"잠시만요. 8시 되어가는데요."
"8시요?"
이 가게에는 시간 개념이 사라지는 블랙홀이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사장이 쏟아내는 헛소리들이 내 시공간을 일그러트린 걸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이만 집에 가볼게요. 시간도 늦었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아, 그거? 방금 남자친구랑 통화했어."
"네?"
"하도 전화가 오길래. 내가 대신 받았지."
"뭐라고 하셨는데요?"
"사장이랑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랬더니 화가 많이 난 건지 그 친구 집에 간다고 하더라고."
"핸드폰 돌려주세요."
"자, 여기."
이상하게 그가 순순히 나의 전화를 돌려주었다.
"아휴,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이만 집에 가자."
화장실에 다녀오자 사장의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자 해는 저물어 있었고, 깜깜해진 서울바닥은 너무 낯설었다.
"저는 일단 큰길로 나가볼게요."
"아, 아니야 역으로 갈 거지? 내가 이 길 잘 알아. 나도 역으로 갈 거니까 같이 움직이자고."
그는 내 손목을 잡고 이리저리 더 깊은 골목길로 향했다. 그렇게 사장이 멈춰 선 곳은 모텔에 딸려있는 호프집이었다.
"어이쿠, 내가 길을 잘 못 들었나 보네. 내가 이 바닥 되게 잘 아는 곳인데. 여기서 한 잔만 더 하고 갈까?"
"저, 집에 갈 거예요. 부모님한테 전화가 오고 하니까 집에 가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나였는데, 왜 그전에는 저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아, 아 그래. 그러면 집에 가야지. 부모님도 걱정하신다는데."
그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나오자 더 낯선 동네가 나타났다.
"아휴, 여기서 역까지 걸어가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가자고. 내가 택시비 내줄게."
사장은 손을 뻗어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이거 타면 될 거 같아."
문이 열린 택시에 내가 타자, 카드를 꺼내 나에게 주려다 내 몸을 옆으로 밀더니 자신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어린 여자 혼자 보내는 게 영 찜찜하잖아. 같이 가자고."
"택시비 그냥 제가 낼게요. 그냥 따로 가시죠."
"아이 어떻게 그래. 기사님 00동 출발해 주세요."
"네, 출발합니다."
그렇게 택시는 출발했고, 늦어진 시간 탓에 도로는 한적했다. 한강을 지날 때쯤 나는 해탈한 상태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다리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 처음에는 가방끈이 다리에 닿는 줄 알았다.
자꾸만 닿는 불쾌한 기분에 다리를 바라보자 사장은 내 치마 속 허벅지 안을 만지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놀라서 사장을 바라보자 사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잠든 게 아니었네. 자는 줄 알았지."
"뭐라고요?"
내가 큰소리로 화를 내자 택시 기사님은 룸미러로 뒷좌석을 확인했다.
"뒤에 무슨 일 있어요?"
"아, 여자친구인데 제가 좀 실수를 했더니 이렇게 화를 내네요. 하하. 참나. 요즘 애들이 좀 앙칼져요. 괜찮습니다. 기사님."
"여자친구라고요? 둘이 나이차이가 꽤 나는 것 같은데?"
"네, 여자친구요. 제가 좀 능력이 좋아서, 어디 가서 도둑놈 소리 듣습니다."
"좋으시겠어요."
기사님과 사장님은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어이없는 상황에 말을 잃었다.
사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 아니라고 이 새끼가 내 다리를 만졌다고 소리를 지르고 회사를 때려치우는 게 맞는 것인가, 그냥 참고 없던 일로 만드는 게 맞는 것인가.
집 근처에 다가가 기사님은 더 정확한 주소를 물어보았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 그냥 저 앞에 버스정류장에서 세워주세요."
나는 집까지 같이 가는 것이 껄끄러워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내렸다.
"00 씨, 잘 들어가고 오늘 회식했으니까 내일 10시까지 출근해도 좋아. 오늘 00 씨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
사이코패스인가? 창문에 기대어 나에게 말을 거는 사장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장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을까 연신 웃고 있었다. 내가 10년도 더 된 이 이야기에 화가 나는 건 그 사람 얼굴에 침 한번 뱉어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집에 걸어가며 눈물을 흘렸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하는데, 화를 내야 하는 대상이 늘 나였다.
그때 그렇게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러니 눈물만 흘릴 수밖에.
[나, 이제 집에 도착했어.]
차마 울어서 잠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문자로 내 상황을 전했다.
[잘했네, 잘 자.]
남자친구도 나에게 더는 묻지 않았다. 아마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여전히 그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던 건지 알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알 수도 없겠지만.
다음 날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이틀 만에 회사를 가지 않겠다는 딸에게 엄마는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 다그쳤지만, 나는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고만 말했다. 이런 식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아, 몰라. 그냥 나랑 안 맞아. 일도 별로야 나 그냥 작가 그런 거 안 할 거야. 완전 별로야. 완전."
"아니, 이틀밖에 안 나갔는데 안 맞고 말고 가 어딨어. 더 해봐야 아는 거지."
"안 해. 안 할 거야. 다신 안 해. 그 정도로 싫어."
"아휴,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 거야."
"출근 안 해. 다른 일 알아볼 거야.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아."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내뱉는 나 자신이 싫었다.
10시 이후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몇 차례 전화가 오더니 문자가 날아왔다.
[어제 많이 피곤했죠? 00 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출근해도 좋아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답장하지 않았다. 무단 퇴사. 그게 나의 첫 회사생활의 시작이자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