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1

잘못 끼운 단추 하나.

by 해다니

3n살. 나는 경력이 단절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사적인 정보들을 미리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주 평범하게 자랐다. 물론 사람에 따라 나의 평범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주변 사람들 통계로 보았을 땐 나는 그저 그런 존재였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고,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긴 한다. 어쩌면 루저였던 내 인생을 '평범'이라는 말에 꿰어 맞추며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얼레벌레 자라 22살.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전공 후 졸업했지만, 나에게 맞는 장르를 찾지 못했다. 소설도 극본도 그렇다고 논술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성인이 되면 알게 된다는 정체성은 여전히 인생은 오리무중이었다.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 몇몇은 인맥을 쌓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나는 그 시기에 집안에 일이 생겨서 함께 다니지는 못했다. 공부보다는 취업을 해야 했다. 취업시장에 나의 전공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고, 경력이라고는 집 근처 마트에서 명절 선물 세트를 팔아봤던 게 전부였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취업을 해야 할지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부터 인생의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걸까.


알바사이트에서 일을 구했다. 외주 제작사 막내작가였다. 면접은 강남 고층빌딩에서 봤는데, 출근지는 문래동이었다. 문래동에 위치한 아주 작은 공유 오피스 한 칸, 그 안에 사장과 나 그리고 입사동기 1명 셋이 전부였다.

낡은 컴퓨터 모니터와 전화기 한 대.

내가 접한 회사의 풍경과 거리가 있었음에도 그 당시에는 내가 취업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친구들에게도 외주제작사이긴 하지만, 막내'작가'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저 내가 전공을 살려 '작가'라는 타이틀이 그 당시에는 나에게 너무 소중했다.


그곳에서 내 업무는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음식점들에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oo프로그램 제작하는 00이라고 합니다. 혹시, 가게에 홍보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그곳에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홍보목적으로 전화를 돌리고, 일부 수수료를 챙기는 일이었다.


"00 씨는 술 얼마나 마실줄 알아?"

"네?"

"주량이 얼마나 되냐고."

"글쎄요. 그렇게까지 마셔본 적이 없어서요."


점심을 먹으며 사장이 나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가 첫 회사야? 일은 할만하고?"

"아, 네... 뭐, 이제 첫날인걸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짜가 대놓고 앞에서 일이 생각보다 별로네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저 형식적인 대답만이 오갈 뿐이었다.


일은 바로 다음날 터졌다. 입사동기였던 남자 직원은 하루 만에 나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하루 만에 도망간 그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였을지도 모른다.


"00 씨, 옆자리 직원 안 나온다 말 있었어? 요즘 것들은 안 나오면 안 나온다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아, 연락해 보겠습니다."

"됐어. 다시 뽑으면 그만이지 뭐. 나 지금 강남으로 미팅 가니까 혼자 사무실 좀 지키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남으로 떠난 사장과 사무실에 홀로 남은 나.

이 날은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충주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본가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나름 퇴근 후 그를 만날 생각에 예쁘게 차려입고 왔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치마도 입고, 화장도 하고 퇴근만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점심시간. 홀로 밥을 먹으려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00 씨, 지금 저번에 면접 봤던 그 건물인데. 내가 책상 위에 중요한 서류를 두고 왔지 뭐야. 그것 좀 가져다 줄래? 그거 가져다주면, 여기서 바로 퇴근해도 좋아."


점심시간에 서류만 전달해 주고 퇴근하라는데, 이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었을까. 나는 서류를 들고 바로 강남으로 향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저 도착했는데요."

"아, 지금 내가 외부에 나와있는데 거기서 쭉 직진해서 00 은행 보이지? 거기서 좀 더 안쪽인데 거기로 와줄래?"


사장은 골목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한 서류를 꺼내 건네주려고 하자 사장은 나에게 말을 번복했다.


"어! 여기야. 여기. 점심시간에 오라고 해서 미안해, 밥은 먹었나?"

"아, 아니요. 퇴근 후에 먹으려고요. 약속이 있어서."

"지금 내가 00 씨 약속 있는 거 물어본 게 아니잖아. 내가 밥 안 먹었다고 이야기하는 건데, 사장이 안 먹었다는데 같이 먹는 게 예의라는 거야."

"아, 네..."


사장은 바로 앞에 보이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곳은 점심장사를 하는 술집이었다.

이런 곳에서 밥을 먹는다고 하는 놈이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00 씨 약속 있다고 했으니까, 나 먹는 거 앞에서 구경만 하다가 가. 그러면 퇴근시켜 줄게. 여기까지가 업무시간인 거야. 알았지?"

"아, 네...."


시간을 확인하자, 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내가 원래 반주를 즐기는 편이라서. 맥주 한잔 할 건데 00 씨도 한잔 할래?"

"아니요. 저는 조금 있다가 약속이 있어서요."

"하,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줘야 하나. 어른이 그것도 상사가. 내가 사장인데 사장이 먹으라고 권하면 안 먹더라도 앞에 두는 게 예의야."


그는 표정을 구기며 나를 노려봤다. 처음부터 자기 뜻대로 할 거면서 왜 자꾸 나에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는 것일까. 내 동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앞에 생맥주 한 잔이 놓일 뿐이었다.


그 시절 나는 멍청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멍청했다. 멍청하다는 걸 알아차리기엔, 세상이 너무 낯설고

나는 너무 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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