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9

그곳 사람들

by 해다니

D선배는 사무국에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지금은 스펙이 없으면 부족해서, 많으면 넘쳐서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D선배가 입사할 당시에는 지인 소개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지방 방송국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는 그곳의 절대 권력자와 같았다.


D선배는 예능국 국장님의 비서이자, 운영국에서 나가는 모든 사무용품들을 관리했는데 국장님이 3년 동안 3번이 바뀌어도 그녀의 자리는 변함이 없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커다란 권력은 당연히 따라왔겠지만, D선배에게는 아주 사소한 곳까지 권력이 뻗어있었다.


운영국에서는 스케치북들과 사인펜, A4용지 등 간단한 사무용품을 지급해 주는 역할도 했는데, 그녀의 기분에 따라 배급되는 양이 달랐다.


"오늘 D선배, 기분 어때 보이세요?"

"아까 보니까, 뭐 새로 샀다고 기분 좋아 보이시던데."

"어머, 그래요? 지금 가야겠다."


작가들은 그녀의 상태를 살피고 운영국으로 향했다.


"저희 이번에 촬영 나가야 해서 스케치북 10권 정도 필요하거든요."

"어느 팀?"

"00팀이에요."

"알았어요. 거기 수량 적고 가져가요."

"아, 매직이랑 사이펜이랑 보드마카도요."

"그거 저번에 많이 가져가지 않았나?"


은근히 사람을 깔보는 듯하면서도 고상한 척 기분에 따라 반말과 존댓말을 쓰는 것이 D선배의 말투였다. 여기서 밀리면 오늘 받아가야 할 용품을 진행비로 처리해야 했기에, 작가들은 선배의 자리를 훑어보고 서둘러 말의 주제를 바꿨다.


"어머, 그 립스틱 비싼 거 아니에요? 이번에 구하기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아, 이거? 7만 원."


선배의 자리는 늘 어디서 이런 걸 구해왔는지 싶은 물건들을 책상 위에 어질러 놓았다. 우연을 노린 척 자신을 과시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 값을 알아주는 것을 즐겼다.


"매직이랑 뭐 더 필요하다고? 매직, 사이펜, 보드마카, 색별로 다 챙겨줄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00팀은 원하는 용품들을 얻어 갈 수 있었다. 그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팀 작가들도 D선배를 향한 아부를 이어갔다.


"어머, 옷 새로 사셨어요? 너무 잘 어울리세요."

"이거, 35만 원."

"아, 진짜요? 선배님이 입으셔서 그런가 훨씬 더 고급져 보여요.:

"그렇지. 옷빨이 아니라 사람빨이지 뭐."

"그러게요. 선배님이랑 정말 찰떡이시다."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아부와 눈썰미만 있으면 충분했다. 정말 그 옷이 고급지고 예뻤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녀가 들고 있는 것 반은 진품이고 반은 가품이었기에 아마 아닌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사람이 있을까? D선배는 걸어 다니는 가격표였다. 물건에 손을 대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격부터 말했다. 옷도 가방도 립스틱도 가지고 다니는 모든 액세서리의 가격을 외우고 있었다. 운영국에서 혼자만 공채 출신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자기 존재의 가치를 늘 금액으로 환산하고 싶어 하는 이상한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금전에 대한 욕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발휘되었다. 그녀가 '부수입'을 올리는 방식은 생각보다 뜻밖의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D선배는 아주 오래 근무했기에 많은 월급을 받았고, D선배의 남편 또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졌다고 들었다. 부족함 없는 통장을 지닌 그녀가 모두가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에 홀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자리에서 홍보용 싸인 앨범을 한가득 박스에 담아왔다. 그렇게 훔쳐온 것들이 박스 3개를 가득 채웠다.


"이게 다 뭐예요?"

"비매품."

"어디서 발견된 거예요? 창고?"

"아니, 작가들 자리에서 굴러다니던 거."

"주인 있는 거잖아요."


CD에는 to. 000 작가님.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상대방이 원하던 원치 않았던 매니저들은 앨범이 나올 때면 홍보를 위해 나눠준 것들이었다. 물론 정말 소중했다면 그렇게 먼지를 뒤집은 쓴 채 방치되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주인의 동의 없이 몽땅 수거해 가도 되는 건 아니었다.


"이거 다 폐기하실 거예요?"

"아니, 이걸 왜 폐기하니? 이거 다 돈이야."

"가격도 없고, 이렇게 싸인까지 있는데 누구한테 팔아요?"

"00 이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구나. 이런 거 다 중고로 팔면 다 돈이야~ 내가 잘 아는 거래처가 있어."

"거래처가 있어요? 이런 걸 사요? 하나당 얼마에 사요?"

"그건 영업 비밀이라 말 못 해주지. 이런 거 다 종로나 동묘에서 얼마나 잘 팔린다고."


그녀는 그렇게 소소한 부수입원을 회사 내에서 벌어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자신의 물건이 사라진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도 지나간 방관자들도. 그녀는 그 침묵을 '정리정돈의 미덕'쯤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던 건, 어쩌면 그녀의 크고 작은 권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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