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일기 10

그곳 사람들

by 해다니

갈색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기며 새로운 행정사원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89년생 최 00입니다."

"와...."


다들 그녀의 외형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키 173cm, 몸무게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략 50kg 초반쯤 될 것 같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배우의 느낌이 나던 그녀가 왜 행정직을 택했는지 모두 의아해했다.


"와, 모델인 줄 알았어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아, 말씀 편히 하세요. 제가 동생이에요."

"아, 그럴까?"


그녀는 성격 또한 시원시원했다.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이 있었고, 그 대답에는 활력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셨어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일을 하려고 이력서를 넣긴 했는데, 쉽지 않네."

"오, 어떤 일인데요?"

"그냥, 뭐 간단한 피팅모델."


딱히, 그 일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정말로 모델 지망생이었다.


"키와 몸매는 타고 나니는 거니까."

"맞아 맞아."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털털한 성격의 그녀는 말도 거리낌 없이 하는 편이었다.


"사실, 여기 들어온 이유도 여기가 방송국이잖아. 여기서 눈에 띄고 그러면 혹시 알아? 바로 데뷔할지."

"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pd 님들이고, 맨날 오는 사람들은 매니저들인데 캐스팅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원래 이쪽에서는 캐스팅되려고 일부러 엔터회사 근처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그래."

"맞아 나도 그런다고 들었어요."


최 00 언니에게 이곳은 단지 꿈을 위한 발판일 뿐이었다. 정작 업무를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밤새 술을 먹고, 다음날 술냄새를 풍기며 자리에 엎드려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업무시간에 딴짓을 하니 결국 민원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 이번에 새로 오신 분 일 안 해요? 담당자 바뀌고 나서 돈이 안 들어와요."

"네? 그럴 리가요."

"일 하긴 하세요? 왜 맨날 자리에 없어요?"

"저도, 그분이랑 안 친해서.. 그래도 한 번 확인해 보고 제가 말씀 전달드릴게요."


프로그램의 담당자는 분기별로 바뀌기도 했는데, 때마침 내가 오래 맡아왔던 프로그램이 그녀에게 간 직후 일이 터졌다.


"00 언니, 혹시 이번 00 프로그램 처리 하셨나요?"

"아,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볼 거 있었는데."

"어떤 문제라도 있었나요?"

"아니 이 부분이 여기서 안 넘어가서. 어? 이거 왜 이렇게 뜨지?"


처리해야 할 기간이 넘어가면 금액을 사용할 수 없게 프로그램 자체에서 막아 버린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듯했다.


"아, 이거 이렇게 뜨면 재무팀에 연락해서 권한 풀어달라고 요청해야 해요."

"그런 이야기 처음 들었는데."

"보통은 이 과정까지 안 가려고 기간 맞춰서 일하니깐요."

"아... 몰랐지.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어떤 부분이 문제셨어요? 이번에 돈 안 들어왔다고 저한테 말씀하셔서."

"이 숫자가 9인지 8인지. 금액이 헷갈려서."

"아, 그거는 그냥 pd님께 다시 물어보시면 되는데."

"그런 거였구나. 그럼 지금부터 하면 되는 거지. 일단 재무팀에 전화하라고?"

"네. 그거 지급일이 정해져 있는 거라서. 이번에 못 나가면 15일 더 기다려야 하거든요. 이번에 전화하면서 긴급으로 나갈 거 있다고 말하셔야 할 거예요."

"알았어. 한 번 혼자 해볼게."


재무팀에 연락하겠다고 했던 그녀는 역시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묶여버린 그들의 소중한 월급은 15일이 지난 후에야 입금될 수 있었다.


"하하하. 그랬다니까. 그거 내 친구들 얘기라고."

"뭔데 뭔데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약속 때문에 잠시 따로 점심을 먹은 날이었다.


사무국에 마련된 작은 휴식공간에서 그녀가 크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분위기는 그녀만 웃고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이번에 그 난리난 사건 있잖아."

"무슨 사건?"

"00시에서 성범죄 옹호했던 그 사건."

"아아. 알지 알지."

"그거, 00 언니 친구들 이야기래."

"그 옹호자들이 친구라고?"

"아니, 그 범죄자들이."


나라면 창피해서라도 말 못 했을 이야기들을 그녀는 자신이 털털한 성격임을 과시하기 위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진짜 웃기지 않아? 내 친구들이 뉴스에 나오다니."


한순간에 주변의 공기가 싸해졌지만 아무도 그녀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 건지 더 과한 액션을 하며 웃기에 바빴다. 배꼽을 잡고 깔깔 웃다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왠지 모르게 멀리하고 싶었던 그녀였다. 처음엔 그저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함이 불쾌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큰 야망을 가지고 들어온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하고 이곳을 퇴사하게 되었다. 그녀는 송별회날에 아쉬운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3개월밖에 일할 마음 없었어. 이 정도면 충분히 눈에 띄고도 남았을 텐데, 반응이 없는 거 보면 그냥 엔터 회사 쪽에서 카페 알바나 하려고."

"네, 잘 되길 바랄게요."


그녀는 여전히 데뷔를 꿈꾸고 있었지만, 그 꿈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송별회는 '행운을 빈다'는 형식적인 말들만 오가며 별다른 아쉬움 없이 끝났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주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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