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필터
사무실의 문을 열자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아, 이따가 외부 손님들 올 예정이에요."
"여기로요?"
"네, 그래서 말인데 00 씨가 가서 화장실 청소 좀 할래요?"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 건물은 7층짜리 건물인데도, 각 층을 임대한 사업자가 직접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고 했다. 넓은 사무실에 비하면 화장실 규모는 굉장히 작았다. 세면대 1개, 남녀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1칸, 그리고 외부에는 남성용 소변기가 있었다.
화장실을 바라보고 있으니 까마득함이 밀려왔다. 방송국에서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 당연했는데, 너무 편한 업무만을 하다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본래 내 업무가 아닌 일들을 자꾸 해야 하는 내 처지가 우스웠다. 이런 게 중소기업의 현실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던 것일까?
"어제는 운전을 하라고 하더니 오늘은 화장실 청소라니."
뒤늦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나의 사수가 화장실 앞에 서있던 나를 발견했다.
"화장실 청소하래요?"
"아, 오셨어요. 네. 오늘 행사 있다고 화장실 청소 하라고 하던데요."
"지들이 할 것이지."
그녀는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더니, 잠시 후 라텍스 장갑을 들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거 껴요."
"화장실 청소는 돌아가면서 하는 건가요?"
"이거 완전 취업사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제 업무였고, 이제 00 씨 업무이긴 해요."
그녀는 왼손으로 눈썹을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다른 직원들은 영양사라는 직책을 가졌기에 이런 더러운 업무까지 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자신이 맡아서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똑같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왜 한 사람이 책임지고 청소해야 하는지 의문이긴 하다. 만약 번갈아가면서 했다면 이 정도로 부당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대충 여기다가 휴지통 비우고, 이 부분에는 락스를 뿌리고 그 안에까지는 하지 마요."
금방 끝날 것 같은 작은 규모의 화장실은 이리저리 치우다 보니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는 것이 사무직 아니었던가. 굽은 허리를 펴며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외부행사준비로 바쁘다던 사람들은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부터 들은 이런저런 안 좋은 이야기들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어서일까? 나에게 생겨버린 편견은 그들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손님들이 찾아왔다. 행사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근처 어린이집과 협업하여 음식관련된 내용을 들려주는 인형극 같은 분위기였다. 꼬꼬마 아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인형극을 관람했다.
"아, 맞다. 저 내일까지밖에 안 나와요."
"전, 아직 제대로 인수인계받은 게 없는데."
"저도 얼마 일 안 해서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없긴 한데. 오후부터는 업무 알려드릴게요."
인수인계 기간은 단 3일이었다. 전전 사람이 만들고 나갔다는 인수인계서는 꽤나 엉망이었다. 나도 방송국을 나오면서 업무인수인계를 이렇게 했던가, 약간의 반성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거 누르면 이 화면이 나오거든요. 여기서 이거를 누르면 끝입니다."
"아, 이거는 제가 예전에 했던 거와 동일해서 알 것 같아요."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달랐지만, 그래도 꽤나 비슷하게 흘러가는 내용들은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그 외에 것들이 문제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때그때마다 들어오는 거 처리하셔야 해요."
"예를 들면"
"보통 화장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늘처럼 외부인 오면 아침에 해야 하고, 사무실 청소는 3일에 한번 대청소하고 있어요. 저기 보이는 것들은 은행 가서 해야 하는데, 담당자분이 잘 알고 계셔서 그냥 가져가면 될 거고.... 아, 오늘 차 수리한 거 찾으러 오라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두 명씩이나 움직여도 괜찮아요?"
"차 찾아서 바로 고문님 모시러 가야 하거든요."
"거의 뭐 운전기사가 맞네요."
늦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택시를 타고 차량 수리점으로 이동했다. 차량을 찾고, 00 대학교까지의 운전은 내가 맡아서 했다. 그래도 어제 한번 잡아본 운전대였기에 꽤 익숙해졌다. 00 대학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고문님은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운전자 바꿔."
"제가 내일까지라서 운전 연습해야 하긴 해요."
"싫으니까, 그냥 바꿔."
아무래도 어제의 충격이 매우 크신 듯싶었다. 오히려 속으로는 '이제 운전 안 해도 되겠구나' 하며 안도했지만, 운전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운전은 계속되었다.
사수의 퇴사 처리가 완료된 후, 나는 홀로 관내 음식점 관련된 행사를 준비해야 했다. 나는 나대로 자료 조사를 하느라 바빴고, 다른 6명의 직원들은 각 팀을 이루어 관내 어린이 기관의 학생 수와 음식 선호도를 조사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서로 말 섞을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홀로 점심 먹는 것도 익숙해져 갈 무렵, 그들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00 씨, 밥 같이 먹을래요?"
"무슨 밥이요?"
"점심이요."
의외로 먼저 식사를 제안하는 걸 보니, 퇴사한 사수가 했던 말과는 달리 괜찮은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