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생각(인간미 편)
말이 필요 없는 시대
맥도널드 자동주문 기계에서 주문하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고 서툴다. 화면의 품목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조작방법도 서툴러서 주문은 매 번 실패한다. 아니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실패로 이어지는 듯하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고 핀잔을 주지만 버벅거리며 기계로 주문하느니 차라리 실패와 핀잔을 무릅쓰고 사람을 선택한다. 진심을 말하자면 내 안에서 기계를 거부하고 사람과의 교감을 원하는 듯하다. 롯데리아나 KFC와 같은 매장에서도 언제부턴가 '자동 기계로 주문하는 시간입니다'라고 쓰인 푯말로 주문대를 막아놓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이 계산대 앞에 사람을 불러 세운다. 사람과 교감하며 주문하고 싶을 뿐이고 나는 불편을 선택하더라도 아직 기계에 익숙하고 싶지가 않다. 여전히 아날로그가 더 익숙한 나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감성이 느껴지는 삶을 살기 위해 서로를 대하고 얼굴과 눈을 마주 보고 표정을 읽으며 여러 가지 몸짓의 언어를 교환하고 싶다.
말을 하지 않고 자동주문 기계로 주문을 하면 인건비가 줄어들고 편할 수는 있어도 그나마 한 줌의 정마저 사라진다. "몇 번 손님 주문하신 햄버거가 나왔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주문한 사람은 그때도 아무 말 없이 가져가면 끝이다. "이거 이거 맞으시죠?" "감사합니다" 정도라도 말을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주 볼 사람도 아닌 아르바이트생과 감정 교류를 굳이 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말이 필요 없는 사회'는 능률과 간편함의 대가로 마음과 관계에서 인간미가 사라지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공기청정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비 온 뒤 숲 속의 공기를 따라갈 수 없다. 한 때 어떤 이들은 e_book으로 인하여 태블릿 pc 하나만 있으면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간편하게 담아서 가지고 다니며 어디서든 읽을 수 있기에 무겁고 번거로운 종이책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 호언장 담지만 그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사람들은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종이 냄새를 맡으며 손가락으로 전해오는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고 웅크리거나 걸터앉아 책을 보는 행위를 사랑하며 그 행위가 더해져야 책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신문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내용이 화려하고 감동적인 글이라도 전자메일로 보내오거나 인쇄되어 나온 편지를 받아 읽는 경우보다 필체는 개발새발이더라도 손으로 직접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 유난히 더 감동받는 이유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사랑의 감정이 에너지의 파동으로 전환되어 사람의 본성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사랑은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닌 슬픔, 감동, 흥분, 분노 등의 감정을 수반한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진심의 말과 신과 사람에서 나오는 사랑을 먹고살며 관심과 희망 그리고 만져지지 않는 접촉에서도 느끼고 서로 위로함을 나누며 살아가야 진정 살아있음을 느낀다.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영화 <아퀼 리 브리엄>은 21세기 초 지구 ‘리브리아’라는 새로운 세계의 독재자가 통치의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사랑, 분노, 증오 등의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정기적으로 투약하게 하고 극 중 존 프레스턴으로 분한 크리스천 베일은 약물 투여를 거부하고 책, 예술, 음악 등을 통하여 여전히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반대세력을 소탕하고 책이나 예술작품을 불살라 없애버리는 일을 하는 특수요원으로 나온다. 하지만 결국 존 프레스턴은 아내의 숙청, 동료의 자살 등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약물을 거부하고 사라진 감정을 되찾아가며 감정과 인간미가 사라진 제국 '리브리아'를 마침내 끝내버린다는 줄거리다.
영화 <아퀼 리 브리엄>에서는 사람들이 물밀듯 출퇴근하는 모습이나 광장에 군중이 모여 통치자가 나오는 화면을 응시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의 옷이 동일하며 대화가 없고 무표정함으로 삭막함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웃음과 눈물이 사라진 무미건조함은 곧 죽음과도 같다. 이러한 이유로 간편한 것과 인간미에서 승자는 단연코 인간미가 될 것이라 나는 확언한다.
<나 혼자 산다>가 인기 예능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얼마 전만 해도 어색했던 혼밥, 혼영, 혼술 등 밥도 영화도 술도 여행도 혼자 먹고 보고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니 더욱 말할 사람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끼며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어떻게 말하고 대화해야 하는지 방법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자동주문 기계' 라니. 우리는 더 말해야 하고 서로를 느껴야 한다. 전화도 통화보다는 문자가 편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문자로는 이런저런 말을 잘하던 사람이 얼굴 보고 있으면 문자를 서로 주고받으며 농담도 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게 어색해하는 이들도 있다.
혼자일수록 기회를 만들어 더욱 뜨겁게 대화해야 한다. 그러면 면역력도 증대되어 잔병도 사라질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사회와 인간미 없는 사회는 동일하다. 사람은 말을 하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생각을 듣고 공감을 얻고 위로받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사람이 살아난다. 감정의 교류가 답이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정신이 있는 영적인 존재인 '생령' 이기에 살아있음을 서로가 확인 해주고 받아야 한다. 말이 필요 없는 기계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면 기계를 마주하고 라도 말하라.
말로 하는 모든 것
양재규 스피치 양재규 원장
스피치 심리상담/ 스피치 코칭/ 대화 코 치칭/ 관계 코칭/ '사람을 살리는 말하기' 강연
저서: 당신만은 행복하라
[사람 살리는 말하기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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