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린워싱범의 슬픔

녹색 자본주의는 ‘열림교회 닫힘’이고, 마케터는 그린워싱범인가?

by shotchuu

2022.06



그 해 여름에는 비가 정말 많이 왔다. 과장이 아니고 한 달 내내 비가 왔다. 아침마다 양말과 바짓단이 마를 날이 없었고, 강물이 잔뜩 불어나 한강공원이 물에 잠겼다. 처음엔 가평 물놀이 약속을 취소하는 수준인 줄 알았는데, 물놀이고 나발이고 한 달 내내 맑은 하늘을 거의 못 보다시피 하니 약간 정신이 나갈 것도 같았다. 기나긴 정신의 흠뻑쇼였다.

그 해는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면역 없는 전염병에 사회는 마비됐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다. 여름이 오면 바이러스도 누그러질 줄 알았는데 비만 잔뜩 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팬데믹도 장마도 도무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그때 휴학을 하고 난생처음 인턴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울한 나날이었다. 그날은 그 지긋지긋한 팬데믹과 장마가 지속되던 여름날 중 하루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한가득 타고 있는 습한 장마철의 퇴근 버스가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었고, 나는 창문 너머로 침수된 한강공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들이 물에 잠겨 있고, 이렇게까지 불어나도 되나 싶을 만큼 잔뜩 불어난 강 위로 온갖 초목과 부유물이 둥둥 떠다녔다.


나는 그때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며, 조금 우습게도 기후변화라는 개념을 최초로 뼈저리게 실감하고 어떤 두려움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그 여름에 한강공원이 물에 잠기고 기약 없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이 이룩한 산업과 문명으로 인해 지구는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변한다는 것은 생활이 이토록 거대한 불확실성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일상도 경제도 생활도 풍비박산 낸 이 미지의 바이러스 같은, 열대의 우기 스콜을 연상시키는 이 기나긴 장마 같은 예측불허의 재난은 앞으로 더욱 자주, 더욱 길게 우리를 덮쳐올 것이다.


내가 지금껏 머리로만 대강 이해하고 대충 진보적 가치니까 지지했던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벼락 맞듯 깨달은 순간이었다. 책과 기사, 다큐멘터리를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어떻게 지구를 위협하는지, 고기로 먹을 소를 기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삼림이 훼손되고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 제대로는 처음 알았다. 창피하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 고대의 바이러스도 해동되어 면역이 없는 인류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도, 지구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심각한 자연재해가 더욱 큰 규모와 더욱 잦은 빈도로 오게 된다는 것도, 지표면의 거대한 삼림이 지금도 불타고 있다는 것도, 이미 식량위기는 시작되어 내가 노년일 즈음에는 채소도 고기도 남지 않아 정말로 진지하게 식용곤충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도. 하루빨리 환경주의자를 지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노력들은 해 보기로 했다. 그때의 결심이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당장 환경주의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대차게 결심했으나..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개같이 실패했다.. 고 표현하는 건 내가 너무 슬프니 100%중 겨우 8-9%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겠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친환경생활을 영위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완벽하게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실천하며 급진환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수준까진 아니었는데, 그래도 대찬 결심에 비해 내디딘 발걸음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플라스틱과 고기 소비를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비건이나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등 일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친환경적 선택을 하려고 한 2년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화석연료를 태우고 플라스틱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가 왕창 나오는 배달음식을 주에 몇 회씩 시킨다. 기쁜 날이면 비인간적 방식의 공장식 사육으로 키워 도축한, 지금도 메탄방귀를 뿡뿡 뀌며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있는 소의 고기를 먹는다. 유행에 너무 민감해서 시즌마다 무신사와 크림에서 막대한 월급을 탕진하며 패스트패션에 일조한다. 포카 뽑는다고 필요도 없는 앨범을 산다. 문제는 내가 하는 행동이 지구에 해가 된다는 걸 하나하나 의식을 하니 너무 괴롭다는 거다. 앞서나가고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반성하고 괴로워하며 지구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텀블러랑 다회용 빨대 매일 빡빡 닦아서 들고 다니고 프라이탁 가방 메고 다닌다고 환경주의자가 뚝딱 되는 게 아니다. 너무 괴롭다. 매일 편리함과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날이다.


물론 시민 개인의 차원에서 하는 노력이 기후변화에 그렇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건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타인들도.. 개인이 그냥 일상적으로 문명을 누리고 있을 뿐인데 그게 지구에 해가 된다며 말리며 내 잣대만 맞다고 들이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도덕적 우월감에 취하고자 하는 추한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실천하며 나아가고 싶었는데, 자꾸 반성할 일만 늘어 간다.


그런데 그간 좀 흥미롭다고 생각한 지점은, 지속가능성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에코프렌들리 한 것, 가치소비, 비건 트렌드, ESG경영.. 기업들은 너도나도 필수적으로 이런 것들을 ‘Gen Z다운 것’으로 정의하고 이걸 지향한다며 동네방네 내놓기 시작했다. 근데 가만 보니 ESG 경영을 실천한다고 대서특필한 어떤 회사는 가격 조정을 위해 병아리 몇백만 마리를 믹서에 갈아 죽인다. 수많은 기업들이 환경을 테마로 팝업이나 일시적인 행사를 열어 쓰레기를 왕창 생산한다. 친환경이라고 광고하기 위해 제품을 몇십 몇백 명의 인플루언서들에게 퀵으로 시딩한다. 이게 뭐지?


물론 이런 트렌드가 자리 잡는 건 긍정적인 게 맞는데. 이 세상이 부르짖는 친환경은 죄다 보도자료 뿌리기용 친환경인가 싶은 생각도 좀 들고… 이런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한다고 나는 이런 보여주기식 ESG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고.. Gen Z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명명되기 시작한 내 세대의 젊은이들이 분명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건 맞는데, 이게 정말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인지 아니면 이게 그냥 유행이고 힙이라서 인스타에 올리긴 하는데 또 다른 유행도 따라야 해서 옷이며 화장품은 철마다 잔뜩 사고 버리는 건지.. 이런 내 또래의 힙스터 젊은이들과 나는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저 기업들과 나는 뭐가 다른가.. 이 시대가 말하는 환경주의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의 목표인가 아니면 그냥 유행이고 힙인가 고민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이 세상도, 우리 세대도, 나도 어쩌면 그냥 그린워싱 그 자체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부끄럽고 절망적이어서 숨참고 다이브 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녹색 자본주의’라는 말은 어쩌면 ‘열림교회 닫힘’ 같은 말인가?

또 여름이다. 우리를 괴롭힌 바이러스는 이제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고 겨우 마스크를 벗었는데 뉴스에서는 원숭이 두창인지 뭔지 하는 새로운 전염병의 국내 감염자가 생겼음을 알린다. 재작년 이맘때는 비가 죽을 만큼 왔는데 올해는 비가 죽을 만큼 오지 않아서 대지가 쩍쩍 갈라졌다. 물론 지금 뉴스에 나오는 전염병은 그렇게 심한 전염병으로 발전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오늘부터 왕창 내리기 시작한 비로 가뭄은 해갈될지 모른다. 그러나 내일모레 새로운 강력한 전염병이 창궐할지도, 기후이변으로 또 다른 자연재해가 덮칠 수도, 지금 내리는 비가 또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항상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늘 인지해야만 하는 사실, 재난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른다. 어떤 이들에게 이 여름의 더위는, 가뭄은, 혹은 장마는 생존의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 기온은 계속 올라가므로, 이런 것들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설국열차를 틀었다. 사회과학 전공하고 환경 관심 갖고 나서 이 영화 본 건 처음인데, 감상이 꽤나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는 지금 설국열차 세계관에 성큼 다가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설국열차에 올라탔는지도 모르겠다. 부품이 멸종하기 시작한 엔진을 어떤 방식으로 돌리고 있는지 알면서도 기차가 영원히 나아갈 거라고 믿는 상황인지도..


매번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세상에 절망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해봐야지 싶다. 예견된 미래일지라도, 나는 기차 옆을 부수는 사람이고 싶다. 바퀴벌레 단백질양갱 먹을 때 먹더라도.. 지속가능성이 유행이고 트렌드가 아니라 시대정신일 수 있도록. 우리 세대 화이팅. 그리고 나.. 화이팅.




설국열차를 보고 잤고 비가 많이 와서 남긴 일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대의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