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해 드립니다

브런치 출사표

by shotchuu

나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한때는 누군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사람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냐 하면… 사람들은 늘 나를 보며 ‘트렌드를 온몸으로 맞는 애’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미디어가 말하는 ‘MZ’의 스테레오타입 같이 생기긴 했다. 아무한테나 슬쩍 다가가 웃으며 말을 붙이는 붙임성, 매년 바뀌는 유행에 따라 조금씩 업데이트 되는 추구미, 거울 앞에서 터뜨리는 플래시와 광각 샷, 늘 섭렵하고 있는 최신 밈들. 부정하고 싶어도 나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젊은이이긴 했다. ‘아샷추’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부터 복숭아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어 먹었다는, 내가 그런 트렌드세터라는 허세를 종종 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밥벌이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역량인 그 ‘감각’이라는 걸 무기 삼아 브랜드 마케터로 일한 지 4년, 인정하기 싫지만 자발적 노예 기질이 좀 있었던 나에게 대행사 AE 일은 그럭저럭 잘 맞았다. 프로젝트 하나쯤은 혼자 리드할 수 있게 됐을 때쯤, -광고주의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AE로 대성하기엔 넌 애가 좀 자아가 세고 반항적이다- 라는 CD님의 피드백을 받았다. 대신 크리에이티브한 건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해내긴 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부응하여, 내 재능을 만개시키고자 주니어 CD로 2차 전직하기 위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사는 삶이 꽤나 적성에 맞아 보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뭐… 재밌어 보이는구먼…- 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물에 명과 암이 존재하듯,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아서 나는 20대 내내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애가 좀 자아가 세고 반항적이다… 라는 말. 그래 그 ‘자아’와 ‘반항’이 문제였다. 나는 무엇이든 의심하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 광고주의 말, 세상의 이야기, 때로는 나 자신까지. 모든 것을 두 번씩 다시 생각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과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죽는 병… 그게 내 인생을 좀 복잡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의심하며 더블체크하고 지켜봐 온 결과, 세상은 그럴듯한 곳이 아니었고 인간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존재였다. 어른들과 미디어가 말하는 중요한 일들은 알고 보니 정말 얼레벌레 굴러가고 있었고, 세상은 모순투성이였다.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상호작용하는 거 자체가 삶의 의미인 존재였다. 다 함께 행복하고 싶었다. 근데 세상이 이렇게 짜치고 별로인 곳이라니… 사실 사람들도 그다지 좋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니… 세상에 나와 깨달은 현실은 내 안에 거대한 인지부조화를 심어 버렸다.


어른이 되고 마주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소비사회는,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걸 목표로 하는 곳이 아니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잘 살게 되고, 약한 이들은 누구의 알 바도 아닌 구조. 나는 인간이 시장논리에 입각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어 왔는데, 알고 보니 세상은 아예 물질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곳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 자신은 너무 모순적인 존재였다. 사람들하고 다 같이 잘 사는 게 삶의 목표라면서, 폭력적인 세상을 유지하는 쪽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꼴이라니. 물질주의를 불신하면서 소비사회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돈을 들여 돈을 버는 구조 그 자체인 광고를 만든다니. 이 죄책감을 덜고자 매일 복잡한 책과 영화를 보고 비평을 쏟아내며 조금이라도 더 사유하려 하는 것도 나지만, 또다시 아무 생각 없이 술 마시고 야구 보고 옷 산다고 무신사 크림에 억만금 쓰는 것도 나였다.


이렇게 짜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데, 그것만으로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기는 날들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자꾸 화가 났다. 그런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 혼자 글을 썼다. 메모장에 문장으로 정리해야만 풀리는 복잡한 회의감들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정제된 언어로 풀어야 내 머릿속도 조금 가지런해졌다. 가끔 그런 글들 중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글들은 종종 블로그나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 글들을 꽤나 좋아한다는, 지인들만 보기는 아깝다는 주변의 애정 어린 말들도 몇 년째 듣기는 했다. 근데 내가 나를 좋아하기 힘들어서 배설하듯 쓴 글을 내가 자랑스럽게 여길 리 있나?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적은 돈을 써서 한 푼이라도 물건을 더 많이 팔아 주는 광고를 만들고 싶은 광고주의 생떼를 받아주다 퇴근하던 어느 평범한 저녁, 나의 재능을 누군가의 지갑을 채우는 데만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를 만드는 일은, 트렌디하게 살아가는 일은 적성에 맞고 재미있지만 자꾸만 나를 의심하게 하니까. 그럼 그 의심과 사유를 동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도 하나쯤 뚫어 둬도 되지 않나?


그래서 충동적으로, 마음을 먹자마자 브런치 작가 등록을 신청했다. 신입사원일 때, 일한 지 2년쯤 됐을 때, 그리고 최근에 생각을 정리하려고 쓴 글 세 편을 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어젯밤 낸 신청서에 오후 두 시쯤 합격 목걸이가 주어졌다.


아직도 내가 쓴 글을 세상에 내놓아도 되는지 고민이 많다. 자신도 없다. 그래도 내 글을 좋아한다던 주변 사람들의 말 몇 마디를 떠올리며, 내 메모장을 세상에 조금 열어보기로 했다. 젠장… 역시 나는 사람이 너무너무 좋아…


작가라는 낯선 명함이 덜컥 주어진 지금, 이 공간에는 옛날 언젠가 내가 나를 의심하며 써냈던 글들을 조금씩 꺼내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요즘의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도 이따금 꺼내 놓고자 한다.


써놓고 보니 북벌에 나서기 전 제갈공명이 내놓은 출사표만큼이나 비장한 글이 됐다. 하지만 나는 반성만큼이나 웃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곳에서 나와 세상에 대한 자조와 애정을 담아서, 달면서 쓴 아샷추 같은 에세이를 써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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