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매해갈 望梅解渴

이곳만 지나가면 매화나무 숲이 있다

by shotchuu

2023.07.01


1.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지 4학년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 머나먼 과거의 어느 여름방학, 매일 쓸데없는 짓거리만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초등학생이던 나와 두 동생에게 아버지는 가정 내 자체 방학숙제를 하나 내주셨다.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 n천 개를 찾아 엑셀에다 정리해 보라는 것. 아버지가 리스트업을 요청하신 직업의 개수가 삼천 개였는지 오천 개였는지 일만 개였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초등학생의 기준으로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엄두가 안 나는 숫자였다는 점은 확실하다.


아마 아버지는 자라나는 자녀들이, 지구상에 이만큼이나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니 세상을 넓게 보고 노동과 경제활동의 숭고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깊은 의도를 가지고 그러한 숙제를 내셨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이런 심오한 아버지의 뜻을 모두 이해할 리 만무한 아기 오랑우탄들은, 매일 나가서 동네 애들이랑 벨튀하고 정글짐에서 점프하고 집에 오면 챔프 투니버스나 시청하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싶었지 엑셀이라는 끔찍한 건 죽어도 켜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숙제를 차일피일 미루기 바빴다. 하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결국 셋이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았고, 맨날 메이플 테일즈런너만 하던 컴퓨터로 엑셀이라는 해괴한 프로그램을 난생처음 다루며 세상의 모든 직업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세 아기 오랑우탄이 찾은 첫 번째 방법은, 어린이용 직업탐색사이트 털기였다. 경찰관, 소방관, 요리사 등의 초등학생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직업이나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같은 좀 더 고차원의 이해가 요구되는 직업은 이 선에서 리스트업이 되고, 헤드헌터나 컨설턴트 같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직업들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사이트가 알려주는 직업도 몇백 개 남짓, 어린이 수준의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몇몇 사이트들을 전전하다 이 상태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아기 오랑우탄들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방법.. 꼼수 부리기.. 우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무언가를 떠올린다. 그런 게 뭐가 있지? 아 왜 그거 있잖아 오케스트라.. 헐 천재다. 먼저 오케스트라를 떠올린 세 초등학생은 네이버에 ‘오케스트라 악기’를 검색한 후 엑셀의 셀을 채운다. 바이올린 연주자. 비올라 연주자. 첼로 연주자. 호른 연주자. 바순 연주자. 튜바 연주자. 근데 바순이랑 튜바가 뭔데? 어찌어찌 몇십 개를 채우고, 그다음은 올림픽 종목을 검색했다. 나는 올림픽에 종목이 그렇게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스키점프선수, 봅슬레이선수, 루지선수, 알파인스키선수, 노르딕스키선수, 트라이애슬론선수… 당최 알파인스키가 뭐고 노르딕스키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렇게 열을 하나하나 채워갔던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과 한국의 전통악기와 병원 종류까지 모두 다 털어버렸던 그 숙제의 결말은… 정작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오케스트라 올림픽 이런 방법으로 직업을 리스트업 하겠다는 다소 금쪽이 같은 발상을 참작해 주셨다는 것은 확실하다. 바순연주자도 알파인스키선수도, 본인의 직업수행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며 긍지를 가지고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아아 참 멋있는 아버지와 그에 대비되는 유인원 수준의 자녀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리스트에 1n 년 후 내가 종사하게 되는 직업은 없었던 것 같다. 알파인스키선수도 있고 노르딕스키선수도 있는데 AE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여름에 찾아 헤맸던 몇천 개의 직업들 속에 Account Executive라는 직업은 확실히 없었다.


2.


물론 내가 초등학생이던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경제시장과 미디어 환경은 상전벽해라 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변화했고, 그 당시는 디지털마케팅이 본격화되기 전인 시대였으니 현재의 AE에 해당하는 업무는 기껏해야 언론대응을 하거나 레거시 미디어 광고를 기획하는 정도였으리라 생각한다. 이 장황한 일장연설의 요지는, 나는 어린 시절에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돈을 버는, 직업을 몇천 개 찾아 헤매면서도 그땐 예측할 수 없던 직업을 생업으로 삼고 경제활동을 하는 어른이 됐다는 거다. 이 직업을 가지게 된 후 그때 그렇게 하기 싫었던 엑셀 리스트업을 매일같이 하며 그 여름방학을 떠올렸고 이런 상념이 들었다.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아…


10년도 더 된 작은 에피소드가 20대 중반이 된 내게 이 정도의 인사이트를 주었다면 아버지의 숙제는 성공적이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예전의 내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아니 모르니까 상상을 못 했던 이런 직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는 나의 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선 대부분의 회사원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여기까지 떠밀려 왔다 하겠다. I got pushed.. 떠밀려왔어.


벨튀하고 챔프보는 초딩오랑우탄보다야 당연히 낫지만 여전히 삶을 다 안다고 하기엔 역부족인 고등학생에게, 전공선택이라는 인생 중대사의 결정을 맡겨버리는 풍조가 모든 불행의 씨앗이었을까? 스스로 지나치게 영특한 문과의 달란트를 한 몸에 받은 달변의 g.o.a.t 문돌이라 생각했던 나는 (물론 아니었다) , 이상한 뽕을 잔뜩 맞아 지식인이라면 응당 언론인을 꿈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체왤까?) 어떻게 어떻게 언론과 미디어와 광고 이런 걸 다루는 학과에 입학하여 상경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난 정말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게 간단히 이루어질 거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머나먼 서울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를 하다 보니 언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내 길이 아니었고, 학문 취급된 지 100년도 안 돼서 이론 만든 학자들이 죄다 살아있는 나의 전공학문은 생각보다 근본이 없었다. (학부졸업한 수준에서 하는 말이라 죄송합니다. 우매함의 봉우리일 수도 내가 무지할 수도 커뮤니케이션학 개짱짱 근본 있는 학문일지도…) 온갖 저널리즘 광고 PR 영상 방송 심지어 연출까지 온갖 미디어와 관련된 것들을 찍먹하는 식으로 전공 공부를 하다가 대학졸업을 맞이하게 된 나는 진짜로 이런 수준에서 졸업장을 받아도 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네버랜드가 아니었고 나는 사회로 곧 방생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때 내가 한 선택은 빠르게 경력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직장을 찾자는 것이었다. 나는 착각했던 것처럼 문과의 달란트를 한 몸에 받은 g.o.a.t 문돌이는 아니었으나, 자라나며 온갖 미디어를 섭렵해 대중문화가 내 몸 안에 녹아 체화되어 있는 일종의 대중문화 에밀레종 같은 인간이었기에… 이런 재능과 전공을 살리면서 좀 고생하더라도 빠르게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직장을 얻자. 얼른 프로가 되자.. 라는 목표를 세우고…


AE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한지 이 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나는 이게 아주 크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는지 매일 생각한다. 대중문화 에밀레종이라는 달란트를 생업에 살리고 싶었으면 진작 인터넷방송인이 되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3.


이 직업활동이 나의 사상 및 신념 윤리의식 등과 어떤 점에서 안 맞고 나의 정신을 어떻게 갉아먹고 있는지는 나중에 따로 진지하게 쓰고 싶긴 한데, 우선 소비사회의 단면을 매일같이 마주하며 남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데 이 정도로 정신적 반동이 세게 올 줄 몰랐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믿고, 펜대만 놀릴 줄 아는 사람보다는 험하고 궂은 일이라도 알잘딱깔센으로 잘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어서 생각보다 일이 고상하지 않다거나 하는 이슈는 전혀 아니다. 급여가 많고 적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고 그런 것도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이슈는, 적어도 내 기준에 이런 일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굳이 필요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브랜드 인지도 높여서 물건 몇 개 더 팔아먹자고 벌이는 이 모든 일들은 부자들 배 불리는 거 말고 무슨 의미가 더 있는가? 오늘 내가 한 일이 어떤 여성의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해 명품 화장품을 구매하게 만들어서 어느 다국적기업 오너의 주머니를 든든히 채워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직업이라는 게 생계유지의 수단 그 이상이 아니니까 너무 의미 부여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나보고 너는 모든 문제를 거시적으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으니 정신건강을 위해 좀 그런 버릇을 자제하라고 했다……. 나도 무슨 말인지 안다. 세상에 내 뜻대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자꾸만 이런 상념들이 들었다는 거다.


이게 나의 기준에 바르지 않은 길이라는 것도 알겠고, 원하던 전문성은 딱히 얻어지는 것 같지도 않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일상적이고 짜증 나는 이슈들… 클라이언트의 갑질, 짜치는 업무들, 업계의 병폐 등으로 인해서 도무지 내 직업을 존중할 수 없는 나날이 지속됐다. 하지만 나는 술약속도 잡아야 하고 락페도 가야 하고 산산기어 미스치프 드롭 일정 맞춰서 결제해야 하고 크림에서 한정판 나이키신발 플미주고 사야 하고 네일도 받아야 하고 엔하이픈오빠들도 보러 가야 된다.. 결국 소비를 위해 소비사회에 일조하고야 마는, 비련의 자본주의의 부역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젠장.. 차라리 무지성으로 돈이나 쓰고 말지 이런 생각은 왜 해서 사서 괴로워하는 걸까? 진짜 최악이다..


그럼에도… 신념에 조금 맞지 않더라도 나의 노동을 스스로 좀 존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분이 내어놓는 주 69시간 노동제 같은 헛소리, 매일 벌어지는 노조들의 소요사태 같은 기사들을 읽으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정말 만국의 프롤레탈리아가 단결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은 타이밍이다 싶은데 이제 이 세상에선 그런 건 의제로 설정되지 않는다. 그만큼 세상이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노동자는 노동자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노동자니까.. 구조에 모순이 있으나 이 구조 속에서 벌이는 노동 행위 자체는 숭고하니까. 내가 하는 노동도 숭고하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역할을 수행하며 오늘 하루도 자기 몫을 벌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십수 년 전의 아버지의 직업 리스트업 숙제가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가 왔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본인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치열히 살고 있고, 그러므로 모든 직업은 가치 있다. 알파인스키 선수도 노르딕스키 선수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고, 그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그러니까, 그 여름방학의 리스트에 존재하지도 않던 나의 직업도, 내가 오늘 한 일들도 어쩌면.





망매해갈 望梅解渴

매실을 생각하고 갈증을 품. 공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뜻.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가 후퇴 중에 갈증을 호소하는 휘하 장졸들에게 매실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금세 입안에 침이 괴어 갈증을 풀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

이 매실 얘기는 삼국지에서 제가 좀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늘 공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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