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게 된 탈모샴푸의 진실을 공유합니다.
저는 현직 탈모샴푸 개발자입니다. 탈모에 관심 있는 분, 좋은 탈모샴푸를 찾아 헤매는 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작성합니다. 지난 2년여간 업계에서 일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보았고, 제가 마주한 사실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드리려 노력했습니다.
FACT 1. 샴푸로 머리가 난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FACT 2. 대신, 샴푸가 탈모의 진행을 늦출 수는 있습니다.
FACT 3. 샴푸 가격은 천차만별, 주성분은 사실 비슷합니다.
FACT 4. 탈모샴푸의 주성분들은 일반 화장품에도 쓰입니다.
FACT 5. 마케팅을 위한 컨셉성분, 그마저도 낮은 함량에 주의하세요.
우리나라만큼 탈모샴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많이 팔리는 곳이 또 없습니다. 점점 더 좋아 보이고 비싼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죠. 현빈, 김희철뿐 아니라 지디도 탈모샴푸 브랜드의 전속 모델이 되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 과열된 시장에서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모 고민으로 절박한 소비자들은 화려한 마케팅까지 얹어지면 비싸더라도 지갑을 열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도 여러 제조사와 미팅을 하면서 "비싸게 출시해야 오히려 더 잘 팔려요"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비싼 금액을 지불한 소비자의 좋은 제품을 누릴 권리는 누가 책임지나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하지 않는 탈모샴푸의 과학적 한계. 이를 공개하지 않고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해 이익만 챙기고 있는 일부의 관행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위의 표는 모 기업의 샴푸 제품별 연간 매출입니다. A, B, C, D 순으로 신제품이며 점점 더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기존 제품의 매출은 줄어들고 신제품의 매출이 상승하는데요. 기존 제품보다 비싼 신제품을 출시해 매출을 늘리는 식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신 사실이지만, 탈모샴푸만 잘 쓴다고 머리가 나는 일은 없습니다. 샴푸 단독 사용을 통해 나지 않던 머리가 다시 나는 효능을 입증한 인체적용시험 사례는 적어도 제가 본 중에는 없었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의사분들 또한 인정한 사실입니다.
"그럼 모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성분이나 여러 연구 결과들은 무엇인가요?" 물으실 수도 있는데요, 대부분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으로 이루어진 것들일 겁니다. 혹은 인체적용시험이더라도 공인된 시험기관에서 검증된 방법으로 진행된 실험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이러한 실험 자체가 갖는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된 인체적용시험 결과입니다. 코로나 백신도 동물실험이나 잘 컨트롤되지 않은 시험환경에서는 효과를 검증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업계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직접 탈모샴푸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분들이신데 모를 리가 없죠.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알면서도 소비자를 기만하는 듯한 기획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일례로, 제품 개발 당시 만났던 한 제조사의 영업 직원분께서는 "부활초가 컨셉적으로 참 괜찮은 것 같다. 사막에서도 피어오르는 부활초!"라며 효능의 근거가 없음에도 컨셉적으로만 성분을 추천하시더라고요...
탈모샴푸는 탈모 완화 기능성화장품입니다. 즉, 의약품은 아니고 화장품이긴한데 일반 화장품보다는 뭔가 기능이 더 있는 것이지요. 그 기능은 탈모의 증상을 조금 완화하거나 속도를 조금 늦추는 정도입니다.
대표적인 연구 사례가 독일에서 발표한 한 논문*인데요. 이 논문에는 카페인 성분이 포함된 샴푸를 6개월간 사용 시 모발을 당기는 hair pull test에서 탈락되는 모발량이 13.15%가 줄어들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발 강도가 개선되어 조금 덜 빠지게 된 것이지, 안 나던 모발이 다시 났거나 탈모가 멈춘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식약처도 "발모/탈모방지" 등의 표현은 과대광고 적발대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 논문의 내용이 더 궁금하시다면 '참고자료'의 <Use of a Caffeine Shampoo for the Treatment of Male Androgenetic Alopecia>를 확인해보세요.
다양한 탈모샴푸, 들쑥날쑥한 가격만큼 퀄리티 차이가 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탈모 완화 기능성화장품이 되려면 식약처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합법적으로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미 탈모 완화 기능성으로 심사받은 주성분 구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조사마다 평균 2-4개 정도의 탈모 완화 기능성 주성분 세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제조사별 구성이나 함량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대부분 나이아신아마이드, 판테놀, 살리실산, 징크피리치온, 멘톨로 이루어진 4-5가지의 성분 조합 안으로 들어옵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식약처로부터 '탈모 완화 기능성 샴푸'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탈모 완화 기능성 주성분을 사용해야 하는데요. 제조사별로 보유하고 있는 주성분 조합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시중 대부분의 탈모샴푸 주성분 조합은 비슷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중 일부 성분 조합에 대해서는 기능성화장품 심사자료 제출을 간소화하는 행정예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에 앞으로 더 많은 브랜드 및 업체가 유사한 기능성 주성분 조합을 사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탈모 완화 기능성 주성분이라고 하면, 탈모 완화와 연관이 높은 성분들로 이루어졌을 것 같은데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탈모 완화 주성분 세트를 구성하는 성분들은 탈모에 특출나게 좋다기보다 일반적인 피부 및 두피 건강에 좋은 성분 정도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아신아마이드, 판테놀, 살리실릭애씨드 등은 탈모샴푸뿐 아니라 일반 화장품에도 많이 쓰이는 성분입니다. 균이나 피지를 제거하고, 보습을 돕는 등 두피 및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탈모 완화 샴푸는 탈모를 콕 찝어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두피(피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성분들로 구성된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것입니다.
'컨셉성분'은 말 그대로 제품의 컨셉을 마케팅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하나 혹은 소수의 성분입니다. 보통 하나의 컨셉성분을 정하고 "이 성분은 진짜 좋은 성분이야" 식으로 마케팅에 활용되는데요. 이런 컨셉성분이 샴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발하면서 본 어떤 시중 샴푸의 '검정콩 성분' 함량은 무려 0.00022%(2.2ppm)였습니다. 이건 정말 개발하다가 실수로 한 방울 떨어뜨린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브랜드가 성분 함량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성분을 찾았으면 그 성분을 적정 함량만큼 넣어야 하는데, 비용적으로 부담되고 마케팅적으로는 효용이 크지 않으니까 소량만 넣고 마케팅을 하는 것이죠. 샴푸 성분을 꼼꼼히 따져 구매하시는 편이라면, 핵심성분들의 함량을 체크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비싼 샴푸는 효능이 더 좋아서 탈모를 치료하거나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몰라"라고 기대하시는 지인이 있다면 말려주세요. 비싼 샴푸 대신 본인에게 맞는 적당한 가격대의 탈모샴푸를 구매하시고, 그 돈으로 차라리 약물치료나 건강 관리에 투자하시라고 꼭 말씀해주세요.
탈모샴푸는 탈모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다. 샴푸가 접근성이 좋고, 여기저기서 좋다고 마케팅하니 속는 셈 치고 한번 사보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저는 탈모샴푸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운이 좋다면 탈모의 증상을 어느 정도 완화해주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샴푸로 발모나 탈모의 예방 및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처방받아 먹지, 비싼 영양제를 섭취하며 "영양제가 감기를 낫게 할 거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디까지나 화장품인 탈모샴푸. 본인에게 잘 맞는, 두피와 모발에 불편함이 없는 샴푸를 찾으셨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현명한 소비를 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요약
탈모샴푸는 실제 효능 대비 거품이 많습니다. 따라서 탈모샴푸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 자체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탈모샴푸 사용만으로 머리가 나거나, 탈모를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탈모의 진행 속도를 조금 늦춰주는 효과 정도는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시중 탈모샴푸의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제품별 성분 구성은 드라마틱하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탈모샴푸는 의약품이 아닌 화장품입니다. 본인의 두피나 모발에 맞는 제품을 찾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극적인 효능을 위해 과투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참고자료
조희승, '여전히 탈모샴푸 점유율 1위', 하이투자증권, 2021. 06. 30
"Use of a Caffeine Shampoo for the Treatment of Male Androgenetic Alopecia", J. Appl. Cosmetol, 2010
허강우,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화장품 심사자료 면제', 코스모닝, 2020.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