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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맛, 배추 파스타

by 헤아림


이틀에 걸친 김장이 끝났다. 워낙 여러 집이 모여서 하다 보니 각자 가져온 김치통만 모아놔도 개수가 어마어마했다. 각자 통에 배추김치, 알타리, 깍두기 등을 야무지게 나눠 담는다. 그 자리에서 먹고 남은 수육도 싸고, 같이 먹을 굴도 챙긴다.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가져갈 것들을 챙기고 있는 중에 한쪽 대야에 담겨 있던 절인 배추 조각들을 발견했다.


"엄마, 여기 남은 배추들은 뭐야? 이거 어떡해?"

"응, 그거 자르면서 떨어진 조각들인데 버릴 거니까 그냥 둬."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큰엄마가 비닐을 챙겨 달려오셨다.


"이걸 왜 버려. 이거 볶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 말에 솔깃하여 우리도 한 봉지 챙겨 집에 가져왔다. 그러나 막상 냉장고에 넣어 두니 애물단지가 되었다. 무엇을 해 먹어야겠다 계획하고 들인 재료가 아니어서인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 하다가 문득 파스타를 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bti n이라서 그런가, 그냥 먹을 걸 좋아해서 그런가 평소에도 이걸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맛있겠는데? 하는 상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 날도 그분이 오셨다. 머릿속에서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볶고 배추를 넣고 이미 상상을 끝마쳤다. 상상으로는 이미 최고의 음식이 탄생했지만 실제로 해보면 어떨지 확신이 없다. 가족들이 없을 때 혼자 슬쩍 만들어 맛을 봤다. 오, 배추의 은은한 단맛에 감칠맛까지 더해서 너무 맛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어느 날, 당당하게 오늘의 식사는 내가 준비하겠노라며 나섰다. 배추 파스타를 만들겠다고 하자 정말 이 배추를 넣고 파스타를 만드는 거냐부터 시작해서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다며 아우성인 가족들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주방에 들어섰다. 먼저 해본 대로 마늘과 페퍼론치노, 배추를 볶아 만든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오일 파스타를 완성했다. 맛을 본 가족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엄마가 이 세상에 배추로 파스타 만드는 건 너밖에 없지 않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호들갑인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당시에는 엄청난 레시피를 떠올렸다고 생각하고 우쭐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냥 늘 먹던 냉이 파스타에 냉이 대신 배추를 넣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이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김장을 기다린다. 찌뿌둥한 허리를 두드리며 김장을 돕다가도 한 편으로는 이 파스타를 떠올린다. 사실 김장 배추가 아니어도 언제든 배추를 사서 만들어 먹으면 된다. 그러나 어쩐지 싱싱한 배추를 잘라서 만드는 건 그 기분이 나지 않는다. 이 요리는 김장하는 날 그러모은 작은 배추 조각들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이 즈음에 떠올리는 제철음식이 하나 더 늘어났다.




재료


- 절인 배추 100g
- 파스타 면 85g
- 올리브유 3T
- 마늘 5개
- 페퍼론치노 3개
- 참치액 1t
- 소금 약간
- 후추 약간




만들기


1. 절인 배추를 물에 가볍게 씻고 꼭 짜둔다.
2. 소금을 넣고 끓인 물에 파스타면을 넣어 8분간 삶는다.
3. 편마늘, 다진 페퍼론치노, 올리브유를 넣고 중 약불에서 마늘이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4. 절인 배추를 넣고 살짝 볶는다.

5. 삶은 파스타면, 면수 2 국자를 넣고 강불로 올려 빠르게 볶는다.
6. 참치액을 넣은 뒤 간을 보고 싱거우면 더 넣어 간을 맞춘다.
7. 그릇에 옮겨 담고 후추를 뿌린다.




Tip


1. 절인 배추가 없을 때는 배추를 소금물에 한 번 데친 뒤 사용한다.

2. 배추가 절여진 정도에 따라 간이 다를 수 있으니 처음에는 참치액을 조금만 넣고, 맛을 보며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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