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11월 22일쯤, 첫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때
김장 김치 담그기, 가을 감자 수확 마무리 하기, 양파와 마늘 밭 피복하기
주말에 김장을 했다. 우리 밭의 농사는 김장 김치를 담그면서 거의 마무리된다. 일 년 중 우리 밭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제일 큰 이벤트가 끝이 났으니 점점 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예정이다. 일찍이 심어둔 양배추와 브로콜리 같은 작물들이 아직 자라고 있고, 마늘과 양파 같이 겨우내 밭을 지키는 채소들을 심어 두었기에 아직 밭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러나 여러 채소들이 넓은 밭 전체에서 동시에 자라고 있던 때를 생각하면 이제 "끝났다"라고 얘기해도 될 만큼 아주 작은 규모만 남았다. 이것마저 모두 정리하고 나면 겨우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전부 잠근다. 매일 와서 하루를 온종일 보내던 밭이었는데 며칠에 한 번 잠깐씩 다녀 간다. 온전한 농한기의 시작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농협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지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지역에서는 조합원들에게 씨앗이나 비료, 각종 농기구를 살 수 있는 지원금이 조금씩 나온다. 그리고 1년에 두 번, 고추와 배추 같이 대량으로 심는 작물의 모종을 싸게 많이 살 수 있다. 일종의 공구인 셈이다. 이걸 공구라고 얘기하고 나니 내 또래가 화장품, 영양제 등을 공구할 때 나는 채소 모종을 공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식 웃음이 났다.
7월 초, 소서를 앞두고 문자를 하나 받았다.
"배추 모종 신청, 아래 파란색 링크 클릭!!!"
아무래도 농사를 짓는 연령대가 높아서인지 전에는 우편으로 신청서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 신청서를 작성한 뒤 직접 지점에 방문하여 제출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문자로도 신청폼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종이를 들고 직접 방문해야 한다니 귀찮은 마음이 들던 차였다. 그러나 몸 편하게 집에서 신청을 해두고도 마음 한 편에 불편한 구석이 생겼다.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어른들은 농사에서마저 소외되는 거 아닌가. 다행히 내 걱정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편으로 안내사항이 적힌 신청서를 보내주고 직접 방문하는 창구도 계속 열어두었다. 신청 창구가 나뉘면 일도 늘어날 텐데 그럼에도 농업인 모두가 편한 방법을 찾아 주신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8월 말, 배추 모종 공급 안내 문자를 받고 모종을 받으러 갔다. 주차장에 늘어선 긴 줄을 보며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웠다. 우리는 총 3판을 신청해서 받아왔다. 모종이 아주 작고 한 상자에 여러 개 들었는데도 가벼워서 상자만 들고 올 때는 감이 안 왔다. 상자를 열어두고 보니 꽤 많은 것 같아 그제야 몇 개였나 헤아려봤다. 한 판에 72개가 들어 있으니 무려 216개였다. 말로만 듣던 배추 200 포기 김장을 하는 집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배추 농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김장 날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받아 온 날 바로 심지 않고 상자를 열어 물을 주고 그늘에 두어 우리 밭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 며칠 뒤, 그 사이 조금 자란 것 같은 모종을 밭에 심어주었다. 비닐로 덮어 미리 만들어 둔 밭에 흙을 조금 걷고 모종을 하나씩 넣었다. 조르륵 심어주고 보니 작고 파릇한 것들이 열 맞춰 있는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우리가 심은 배추는 160개 정도였다. 200 포기 김장의 고통이 줄어들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한편, 50개 넘게 남은 모종이 아까워 괜히 엄마를 타박했다. 그러나 남긴 모종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적응을 못해 일찍 죽은 모종이 있으면 그 자리를 채워 줄 여분이었다. 그리고 또 몇 개는 김장용으로 단단하게 키우지 않고, 일찍 뜯어 배추쌈을 먹을 용도로 따로 심었다.
이대로 무사히 잘 커줬으면 좋았겠지만 올 가을 이상스럽게 많이 내린 비 때문에 무름병이 왔다. 작년에는 너무 늦게까지 더워서 배추 농사에 애를 먹었는데 올해는 또 비가 문제다. 무름병은 기온이 높고 습한 날씨에 생기는 병이다. 가운데 생장점이 무르고 썩어 들어가는 병이라 한 번 생기면 손 쓸 방법이 없다. 다른 배추에까지 번지지 않도록 병이 생긴 배추를 얼른 뽑아 버리는 게 최선이다. 처음 무름병이 생긴 배추를 발견하고 나서 엄마가 최고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자꾸 생각이 나는지 수시로 슬퍼하고, 매일 아침 밭에 도착하면 그 사이 또 병이 생긴 건 없는지 제일 먼저 배추밭을 샅샅이 살폈다. 엄마의 지극정성 덕분에 다행히 병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몇 군데 생긴 빈자리를 볼 때마다 속상함을 감추지 못했다. 모종을 남겨 두었다가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어릴 때나 가능한 일이지 이미 자라 버린 배추의 빈자리를 메울 수 없었다.
배추 수확을 코 앞에 두고 밭에 놀러 왔던 친구들이 배추의 크기를 보고 엄청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손질되어 마트에 진열된 배추를 생각하면 내가 봐도 우리 밭의 배추가 엄청나게 크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배추는 저 커다란 겉 잎을 모두 따 버리고 속에 잘 여문 부분만 떼어서 먹는 것이다. 겉의 커다란 잎은 크기만으로 괜히 탐스럽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장 바깥쪽에서 햇빛을 많이 받아 너무 튼튼하게 자란 상태이다. 건강하게 자란 게 좋은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물론 식물로 볼 때는 건강하게 자란 게 좋겠지만 식량으로 볼 땐 섬유질이 너무 질겨서 먹을 수가 없다. 먹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버릴 때마다 아쉬운 건 사실이다. 애써 기른 녹두의 새 순을 몽땅 잘라먹어서 올해 녹두 농사를 포기하게 한 고라니가 이런 것 좀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내 입에 맛없는 건 동물들도 먹지 않는다. 정말 귀신같이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다.
매년 11월이 되면 엄마의 세 자매가 밭에 모인다. 세 자매가 모두 가능한 주말을 고르다 보면 중순이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엄마의 자매들끼리 하던 행사였는데 우리 밭에서 만든 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점점 그 멤버가 늘어나고 있다. 어떤 때는 외삼촌이, 어떤 때는 큰엄마가, 어떤 때는 엄마의 회사 동료들까지 오셨다. 작년에는 갑자기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밭에서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낯설고 생소한 일이었다. 내다보니 사촌언니가 조카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틀 동안 엄청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평소에 보기 힘들던 사람들이 이 날 다 모인다. 명절 행사를 안 한지 오래된 우리 가족에게 이제 김장은 명절보다 더 큰 행사가 되어 버렸다.
첫날에는 무와 배추를 수확하고 마늘, 생강, 쪽파 등을 손질해 둔다. 하루 종일 양념거리를 준비하고 배추를 씻어서 소금에 절여두면 아예 밭에서 불침번을 서는 이모들이 밤새 배추를 뒤집어 가며 정성을 들인다. 다음 날 커다란 김장 매트 위에서 김치 속을 버무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무쳐서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이때 나의 역할은 절인 배추의 물을 꼭 짜고 김장매트 위로 날려 드리는 일이다. "날린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냥 놓으면 그 무게 때문에 바로 앞에 다 굴러 떨어지므로 그야말로 날린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올해 처음으로 김장에 참여한 제부가 "끄응"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물을 열심히 짰다.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먹는다는 제부는 배추에 물이 없어야 김치가 맛있는 거라며 제법 김치에 진심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또 한 번 "끄응" 소리를 내며 온 힘을 다해 배추의 물기를 짜냈다. 그 모습을 보고 제부가 너무 열심히 하니까 내가 대충 하는 것 같다며 한참을 웃었다. 걱정하던 김장이었는데 덕분에 신나고 즐겁게 마쳤다.
김장이 끝나고 나니 이제 한 해가 다 갔구나 싶다. 이렇게 나의 한 해 농사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간다. 처음 시작할 땐 아득하기만 했는데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직 전부 끝난 건 아니다. 남은 작물을 수확하고 내년 농사를 위해 밭을 정리하는 것 까지가 올해 농사의 끝이다. 뭐든지 어떻게 끝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얼마 남지 않은 일들을 끝까지 잘 해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