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동"의 맛, 생강 비스코티

by 헤아림

찬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지면 금방 목이 칼칼하다. 심한 감기로 변하기 전에 냉장고를 열어 생강청부터 찾는다. 머그컵에 생강청을 따르고 팔팔 끓인 물을 부어 살살 식혀가며 마시고 나면 몸이 한결 따뜻해지고 목도 편안해진다. 몇 년 간 심한 감기에 걸린 적이 없는 건 전부 생강청 덕분이라 믿고 있다. 너무 맹신하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몸이 으슬으슬하다 느끼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강청부터 찾게 된다. 이쯤이면 무한 생강교라 불러도 좋다.


내가 늦가을부터 생강차를 끼고 사는 바람에 우리 밭에서 생강을 수확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생강청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몇 년 간 생강을 심고 수확하면서 생강청을 만드는 방법도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편을 썰어서 설탕에 재웠는데 먹을 때마다 생기는 생강편을 먹지도 못하고,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아예 믹서기에 넣어 통째로 갈고 거기에 설탕을 부었다. 그러나 이것도 먹을 때마다 입에 꺼끌 하게 남는 게 불편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시도한 방법은 착즙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예 섬유질을 제거하여 즙만 남기고 나중에 설탕을 첨가하니 입에 남는 것도 없고 깔끔해서 이제는 이 방법으로 고정해서 만들고 있다. 문제는 내 안에 숨겨둔 자린고비 마인드가 다시 비집고 나와 그렇게 즙을 짜고 난 섬유질마저 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즙을 온전히 빼고 난 찌꺼기에는 수분이 거의 없고 섬유질과 생강의 향만 남아 있었다. 설탕도 넣기 전에 짠 것이니 당연히 단맛도 없었다. 이걸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아예 건조하고 바삭한 맛으로 먹는 비스코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름에서부터 두 번 굽는다는 뜻을 가진 비스코티는 수분을 완전히 날려 오독오독한 맛으로 먹는 과자이다. 나와 정확히 같은 재료(착즙을 하고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일단 그냥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거의 10년 전, 구움 과자를 만들어 마켓에 참여하던 때 적어두었던 레시피 노트를 펼쳤다. 당시에는 초코 비스코티, 녹차 비스코티를 만들었다. 이를 활용해 지금 있는 재료로 만들어 봐야지. 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빵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는 적어서 밀가루와 이스트 외에 따로 갖출 게 없는데 구움 과자를 만들 때는 필요한 재료들이 엄청 많다. 그나마 비스코티는 필요한 재료 수가 적은 편이라 과자용 밀가루인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만 새로 구입하면 됐다. 전에 사용하던 레시피를 활용하여 이리저리 만들어 가며 이번 레시피를 완성했다. 반죽하고 굽고 맛보고 하는 동안 예전 생각이 많이 났고, 동시에 아쉬웠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명동에서 열린 마켓에 참여했던 날이었다. 장소가 장소인만큼 외국인 손님도 많았다. 지금처럼 비건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때였는데 한 손님이 비스코티를 가리키며 비건이냐 물어왔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아 빠르게 머릿속으로 재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버터는 넣지 않았지만 달걀을 넣었다. 이게 너에게 괜찮을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 손님은 아쉬워하며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사실 그렇게 이것저것 묻고 그냥 자리를 뜨는 사람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계속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애초에 버터가 들어가는 레시피를 비건 레시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비스코티는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온전한 비건 레시피로 만들어 보았다. 어느 나라에서 온 지도 모르는 그 손님이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이토록 오래 간직해 온 나의 아쉬운 마음이라도 이렇게 털어내 본다.




재료 (약 10개)


- (착즙기로 즙을 모두 빼고 난) 생강 50g

- 설탕 50g

- 무가당 두유 55g

- 소금 1g

- 식용유 10g
- 박력분 120g
- 시나몬가루 3g (생략 가능)
- 베이킹파우더 2g
- 볶은 아몬드 60g




만들기


1. 착즙하고 남은 생강과 분량의 설탕을 섞어둔다.

2. 실온에 두어 찬기를 뺀 두유와 소금, 식용유를 넣어 섞어준다.

3. 밀가루, 시나몬 가루, 베이킹파우더를 체 쳐 넣는다.

4. 반죽을 치대지 말고 칼로 썰듯이 섞는다.

5. 섞는 중간에 볶은 아몬드를 넣고 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섞어준다.

6. 팬 위에 옮기고 반죽을 다듬어 얇고 넓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7. 물 묻은 손으로 모양을 정리한다.

8. 1차로 180°C의 오븐 아랫 칸에서 20분 굽고 꺼내서 20분 정도 식힌다.

9. 약간의 따뜻함이 남아 있을 때 약 1cm 간격으로 썰고 눕혀서 반달 모양으로 팬에 다시 올린다.

10. 160°C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위칸에서 굽다가 15분 후에 꺼내 전부 뒤집어 준다.

11. 그대로 15분 더 구워서 총 30분 굽는다.

12. 꺼내서 식힘망으로 옮기고 완전히 식힌다.




Tip


1. 믹서에 간 생강을 면보에 넣고 힘껏 짜서 즙으로는 청을 만들고 면보에 남은 생강을 이용하여 비스코티를 만들어도 된다. 이때, 착즙기를 사용한 것보다 생강 덩어리가 크고 즙이 남아 있으므로 위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면 생강의 매운맛이 강해진다. 생강의 매콤함을 원하면 그대로, 은은한 생강향만을 원한다면 양을 줄여서 만든다.

2. 식용유는 포도씨유, 카놀라유 등 특유의 향이 없는 기름을 사용한다.

3. 무가당 두유를 기준으로 했지만 더 단맛을 원한다면 가당 두유를 사용해도 된다.

4. 처음에는 반죽이 잘 뭉쳐지지 않지만 계속 자르듯 섞으면 한 덩어리가 되므로 두유를 추가하여 질게 만들지 않는다.

5. 1차로 굽고 나서 썰 때, 너무 식지 않아도 또는 너무 식어도 부서지기 쉬우므로 만져서 약간의 따뜻함이 느껴질 때 썰어준다.

6. 빵칼 사용 시 더 잘 부서지므로 날카로운 식칼을 이용하여 윗면을 톱질하듯 썰다가 마지막에 눌러 자른다.

7. 두 번 구운 뒤에도 약간 말랑할 수 있으나 식고 나면 굳는다. 다 식어도 바삭하지 않다면 한 번 더 구워도 좋다.

keyword
이전 13화"입동"의 채소, 생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