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아저씨 1명을 위한 기차

by 헤아림꾼
hasan-almasi-eO9J7N3OdQE-unsplash.jpg Photo by Hasan Almasi on Unsplash

올해 들어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잔업이지만, 하루빨리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에 오히려 평일보다 더 서둘러 채비를 마친다. 새근새근 잠든 아내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인사말을 속삭인다.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는데 그만 아들의 장난감을 밟아버리고 만다. 소리 없는 비명을 삼키고는 절뚝거리며 현관을 나선다. 회사 로고가 그려진 회색 잠바에 양손을 밀어 넣은 채 마시는 새벽 공기는 꽤 상쾌하다. 새들의 지저귐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 고요한 거리에 내 발소리를 보탠다.


내가 사는 곳은 워낙 작은 시골 마을이라 작년까지만 해도 토요일 새벽에는 기차가 없었다. 그런데 마치 나의 잔업 결심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올해부터 거짓말처럼 새 노선이 생겼다. 덕분에 텅 빈 역사에는 나를 기다리는 두 칸짜리 기차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다. 승무원과 기관사를 제외하면 승객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말 그대로,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한 기차인 셈이다.


기차에 오르면 테이블석에 자리를 잡는다. 창가에 붙어서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나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영화 주인공처럼 창밖을 응시한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호주머니 속 핸드폰 모서리를 훑지만, 모처럼 잡은 분위기가 깨질까 봐 억지로라도 시선을 고정한다.


아침 햇살이 올라오는 창밖에는 영국의 푸른 초원이 휙휙 지나간다. 다음 역, 그리고 그다음 역을 지나도 아무도 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매번 일본의 ‘여고생 한 명을 위한 간이역’ 이야기를 떠올린다.


홋카이도의 한 시골마을은 수익성 문제로 더 이상 열차를 운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마을에는 졸업을 앞둔 한 여학생이 살고 있었다. 열차 회사는 그녀를 위해 졸업까지만 운영하기로 했고 그녀가 졸업하며 역은 폐쇄되었다.


눈 내린 시골 간이역에 홀로 서 있는 소녀...


다시 생각해도 낭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다. 비록 나는 여고생이 아니지만, 이 새벽 기차의 유일한 승객으로서 그 낭만의 궤적을 지구 반대편에서 따라 그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한 달쯤 이 유일한 승객 놀이에 젖어 살던 어느 날, 문득 그 역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져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이내 허망한 사실을 마주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부풀려진 거짓말이었다.


순식간에 창밖을 보며 쌓아온 우수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피해자가 된 기분까지 들어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뉴스는 가짜일지언정 나는 토요일 아침이면 여전히 새벽 기차를 타고 홀로 출근하고 있다.


아저씨 한 명을 위한 기차.


이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화다. 세간에 뉴스라도 좀 타면 안 되나 싶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내가 봐도 저 문장에는 도무지 낭만이 없다.


‘여고생과 눈 오는 간이역’은 수많은 서정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아저씨와 새벽 기차’는 그저 돈 벌러 가는구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피로감만 풍길뿐이다. 저런 다큐멘터리에는 도저히 낭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럼 매주 토요일마다 나를 태우는 기차 직원들은 또 어떤가? 새벽부터 잔업하러 가는 단 한 명의 아저씨를 수송한답시고 기차를 굴리고 있는 승무원과 기관사라니... 이대로면 하반기에 운행시간을 개편할 때 사라질 거 같다.


음, 괜히 직원들에게 미안해진다.


낭만도 수익성도 없는 기차는 오늘도 새벽을 달린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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