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비극을 채점하던 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고향의 한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식장은 아름다웠지만 내 인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해 한국에서 나를 축하하러 와줄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론 내 성격을 고려하면 지금 사는 곳에서 했다 한들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 같다.
텅 빈 객석을 아내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동안 연락도 뜸했던 동창들에게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지? 나 다음 달 토요일에 결혼하는데 축의금은 필요 없으니까, 시간 되면 내가 밥 한 끼 산다 생각하고 와줄래?" 다시 생각해도 정말 염치없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그리 나쁘게 살지만은 않았던 걸까? 다행스럽게도 꽤 많은 친구들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식장을 걸어 들어가며 본 그들의 얼굴은 아직까지도 하나하나 다 기억난다. 나중에 꼭 밥 한번 사겠다는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축하와 함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했던 뒤풀이에서 그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사는 게 다 그렇지" 같은 근황을 주고받다 보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렇게 웃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비교 계산기가 켜져 있었다.
탁탁 타닥타닥...
쉼 없이 돌아가는 계산기는 내 눈앞에서 웃고 있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숫자로 치환해 나갔다.
‘이제 더 이상 학창 시절 친구들과도 마냥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 계산기는 반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기로 유명했던 친구가 입을 여는 순간, 기존에 있던 모든 수식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연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감히 풀어볼 엄두도 못 내던 난제들을 쉬는 시간에 재미 삼아 풀던 수재였기에, 당연히 인생의 성공이라는 문제도 누구보다 잘 풀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털어놓은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 사뭇 달랐다.
대학 입학 후 1년도 안 되어서 큰 병에 걸렸고, 그로 인해 몇 년을 고생했지만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병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탓에, 요즘은 봉사활동을 겸해서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학을 가르쳐 주며 산다는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소란스러운 식당이 일순간 시험장처럼 고요하게 느껴졌다.
잊고 있던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녀석이 입원했다며 같이 병문안을 가자는 문자를 보냈었다. 나는 곧 입대한다는 핑계를 대며 가지 못... 아니, 가지 않았다. 그들의 문자에 응답하지 않은 나, 나의 문자에 응답해 준 그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차마 친구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의 그 망할 계산기는 그 찰나의 반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죄책감이 스며들어올 틈도 없이 나는 안도감이라는 결괏값을 받아 들었다.
'아... 그래도 내가 쟤보다는 괜찮게 살고 있구나.'
나도 모르게 혀를 왼쪽 어금니 사이로 밀어 넣고 지그시 눌렀다. 이 혀를 깨물어서 나를 벌줘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에게 그럴 배짱은 없었고 혀는 어설픈 연기 하지 말라는 듯, 이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그때부터는 친구들과의 대화에 섞이지 못한 채, 머릿속으로 그 안도감이라는 결괏값을 검산하기 바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는 쉴 새 없이 달리는 차들이 뿜어내는 소음과 열기로 가득했다. 어떻게든 안도감이라는 답을 도출한 내 풀이 과정을 비틀어 보려 했다. 하지만 우월감이라는 변수는 그 계산식이 틀리지 않았음만 증명할 뿐이었다.
그날 나는 친구의 비극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위로는커녕 내 답지를 들고서는 그와 비교하며 채점하기 바빴다.
오늘 아침, 모처럼 그가 보낸 안부 메시지를 보고도 내 엄지는 화면 위 허공에 작은 동그라미만 그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