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진 May 07. 2019

내 방에 그림이 생겼다네

박정은 [스파티필름] @cicciolina_seoul

내 방엔 아름다운 것이 거의 없다.

언니 집에서 쓸모없어진 테이블, 아버지 사무실을 폐업하며 나온 랍장, 어머니가 하던 목욕탕을 정리하며 나온 가전제품들, 가장 싸단 이유로 고른 커튼, 가장 때가 타지 않을 것 같아 정해진 벽지 같은 것들로 채워진 방은 '이것이 아니면 안 돼'싶은 나만의 것이 별로 없다.

사람에 따라 자신이 가진 돈을 소비하는 우선순위가 있을 텐데, 나의 경우는 '집을 꾸미는 데 드는 돈' 그다지 높은 순번이 아니기도 했다. 식비, 보험, 저축, 각종 공과금 같은 것들이 내겐 늘 먼저고 그런 것들에 차례대로 돈을 쓰고 나면(혹은 지불하고 나면) 집은 언제나 '다음'이 되었다.

아름다운 물건과 낭만적인 취향으로 공간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바는 아니었지만, 거기에 까지 순번이 돌아올 만큼의 경제적 여유나 육체적 성실함이 내겐 부족했고, 그러는 사이 나의 집은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낀 처럼 '이제 와서 어찌하기엔' 애초에 판이 잘못 짜인 어떤 상태가 되어, 벽지, '장판부터 바꾸지 않을 바에는 그냥 안 건드리는 게 나아'의 현재를 유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예쁜 테이블이나 아늑한 침대보다는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청결함과 고장 나지 않은 난방과 냉방, 문제없이 순환되는 수압과 배수가 내겐 더 중요했다. 이 또한 취향이라면 취향일 수 있으려나. 어찌 되었든 이래저래 하여 내 방은 날것의 실용과 무심한 생존의 흔적으로 켜켜이 채워지게 되었다.


박정은 작가의 '식물 저승사자展'  @cicciolina_seoul

4월의 어느 주말,  박정은 작가의 식물 저승사자展을 보러 가게 되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작가이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녀 그림을 매우 좋아하는 팬이기도 했던 탓에, 한참 전부터 기대하던 전시였다.

"그림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면

"일부러 그런 소리 해줄 필요 없어요."

라는 답이 돌아오곤 하는데,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을 전할 수 없는 그런, '샤이 박정은'으로서 전시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이 모든 그림이 내 방에 걸려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방에 가면 빛을 잃겠지'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들어가면, '너무 좋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 그림은 얼마나 할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갤러리도 낯선데 갤러리에서 그림을 산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갖고 싶다, 그런데 가질 순 없겠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박정은 작가가 한 눈을 판 사이 직원에게 다가가 조용히 가격을 물어보았다.

직원은 친절하게 전시된 그림의 가격 리스트를 보여주었는데, 예상보다 높다고 할까, 낮다고 할까.

'작품'을 기준으로 보면 절대 비싼 가격대는 아니었지만, '나의 벌이'의 기준으로 보면 꽤나 무리가 되는 가격에 잠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에 홀린 듯이 '그래도 제일 낮은 가격의 그림이라도 하나 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우발적인 충동이었다. 요즘 재미를 들린 식물 키우기를 주제로 한 그림인 탓도 있을 테고,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하는 녹색 투성이 전시였던 탓도 있을 테고, 박정은 작가에 대한 평소 팬심도 있을 테고, 뭐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었을까.

출근길에 무턱대고 바다로 가는 기차에 오르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호기롭게 20만 원을 결제하며 이상한 쾌감이 들었다.


내가 구입한 그림에 솔드아웃을 표시하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었다. 멋있어! 짜릿해!


얼마 후 전시가 끝나고, 구입한 그림이 도착했다.

싱그러운 색감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작품이었다.

내 씀씀이의 한계를 넘어서, '내 분수에 맞지 않아'라고 스스로 그어 놓은 경계를 넘어서 구입한 그림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프린트된 엽서나 포스터가 아닌, '진짜' 그림. 작가의 손길이 직접 닿아 그려지고 색을 입힌 그림은 어쩐지 달랐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조화도 생화가 되지는 못하듯이, 진짜 그림에는 설명할 순 없지만 느껴지는 생명력이 있었다.


깨끗한 물에 꽂힌 푸른 스파티필름, 생존으로 채워진 내 방에 다른 종류의 기류를 불어넣는다.  

역시 무리하길 잘했어 싶은 뿌듯함이 든다.

내 방에도 아름다운 부분이 생겼다.


내 방에 그림이 생겼다고, 자꾸 자랑하고 싶어 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된 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