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 흔한 일, 배탈과 장염이 워낙에 일상인지라 이제 웬만한 배앓이는 그냥 아침 문안 인사 같은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럴 때마다 병원에서는 밀가루와 찬 음식을 피하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그런 주의 사항즘이야"오늘도 힘내자, 파이팅!'정도의 정형화된 인사로 흘려 넘긴 지 오래.
빵도 아이스크림도 면도 과일도 포기할 수 없으니, 참느라 괴로우느니 차라리 먹고 아프고를 반복하겠다는 이상한 자기 합리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주말의 배앓이는 여느 때보다 제법 심해서, 며칠간 항생제를 먹기 위한 아주 약간의 죽만을 섭취하며 내가 나를 간병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나마 죽을 먹는 중에도 배가 아파와 거의 좀비와 같은 상태로 방 화장실 방 화장실을 반복하다가,문득 정신이 좀 났을 때 생각난 것이 그저께 사둔 냉장고 속 참외 한 봉지였다.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해 버릴텐데...
그런데 할머니가 참외는 배아플 때 먹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내가 같이 살았다기보다 우리 부모님이 모시고 산 셈이지만....)
천성이 조용하고 부끄럼이 많던 할머니는 평생 식욕이란 게 거의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가끔 나와 나란히 앉아 일일드라마를 볼 적에는 내가 배고프지 않은지를 수시로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과일이나 좀 깎아달라 청하면,
참외를 내주실 때는 언제나 씨 부분을 다 도려 내고서 주셨는데
"제일 맛있는 부분을 다 빼면 어떡해."
하고 투덜거리면
"참외씨 먹으면 배탈 나."
하시며 단호한 표정을 지으셨다.
수박을 먹을 때는 이쑤시개를 들고와서 씨를 하나씩 빼고 빨간색만 남은 수박을 내 앞에 슬쩍 놓아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