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한 말을 꺼냈다.
아주 많은 경우, 말 문을 열면서 품는 마음은
너의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말에 동조를 구하기 위함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알기 쉽게 속내를 풀어내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도 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속으로 내심, 나는 매우 상식적이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법 쿨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내가 듣고 싶은 그 말을 해주는 상대를 만났을 때 '대화가 잘 통한다'라고 말하고
반대의 경우는 '말이 안 통해'라고 돌려서 표현했다.
대화의 티키타카가 잘 된다 여기는 사람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기가 쉬웠다.
"나도"라고 말해주는 대화 상대를 만나면, 금세 신이 나서 '우리는 잘 통해'라며 흥겨워졌다.
만약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는 사람을 만나면, 금방 의기소침해져서는
취향의 차이를 나에 대한 미움이나 공격으로 오해한 적도 많았지.
어쩌면, 그런 불편함을 드러낼 정도의 용기도 없어서
그저 'ㅋㅋ'라며 사람 좋은 척을 해버리기고 씁쓸해지기도 하고.
내가 말할 때는 평가받고 싶었던 게 아니야. 그저 동조를 구하고 내 편이 되어 주길 바란 거지.
그걸 아는데...
네가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왜 세상사를 다 아는 사람처럼, 잘난척하며 이렇다, 저렇다 온도 없는 뻔한 말만 늘어놓았을까.
너의 아픔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내가 아팠던 경우, 힘들었던 경우를 꺼내 비교하려 했을까.
모두는 다정한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랐어. 그런 사람이 곁에 없어 슬펐지.
하지만 내가 다정해질 마음은 먹지 못했어.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