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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Sep 17. 2020

엄마와 공통의 취미가 생겼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2020/09/16

두어 달 전부터 엄마가 넷플릭스를 보기 시작했다.

새로 산 스마트 티브이에서 넷플릭스 접속법을 알게 된 뒤

매일 2~3편씩 각종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끊임없이 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탓에 가장 좋아하던 문화센터를 못 가게 된 지 반년이 훌쩍 넘어서자

엄마는 다시 문화센터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만든 언택트 취미.

무서운 속도로 영상을 정복해가는 엄마는

이제 신작을 나보다 빨리 보고 추천해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주로 [키싱 부스]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추천해주는데, 엄마가 이 장르를 좋아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활동적인 엄마가 방구석 영화관에 빠지게 된 이 시국이 다소 씁쓸한 면도 있지만,

덕분에 엄마와 함께 무언가를 보는 시간이 생기고,

[너의 모든 것] 같은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신나기도 한다.

물론, 결국 텔레비전 밖에 공통 화제가 없는 것인가 싶은 자괴감과, 이거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양가감정도 들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보았다.

엄마에게 리모컨 다루는 법을 차분히 알려줄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애정을 쏟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공통분모를 가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우리가 서로에게 익숙한 것을 조금 더 천천히, 마음을 들여 설명하고 알려고만 한다면, 관계의 재정립을 이룰 수도 있다는 희망.

무엇보다 엄마는 내 상상보다 훨씬 확실한 취향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알아간다.

그걸 너무 자주 잊고 살았음을 생각한다.

오늘, 살아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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