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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Sep 15. 2020

자전거를 탔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2020/09/15

근 2년 만에 먼지 쌓인 자전거를 꺼냈다.

뽀얀 걸 넘어, 까매져버린 묵은 때를 씻어내고

너무나 오랜만의 라이딩을 떠났다.

한강을 향해서, 개천을 따라 달리는 길

이렇게 예쁜 나무가 많았던가. 개천가로 자라난 푸른 잎들을 구경하며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귀에 꽂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길

세상에 많은 일들이 살피지 않고 내팽개쳐 두면, 사라지거나 없어져 버리는데

자전거를 타는 일만은 아무리 오랜만이어도 잊히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자전거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고 만지며

정말 비싼 자전거도 타보고, 정말 오래, 멀리 자전거로도 가보고, 심지어 자전거 관련 책까지 냈었는데

그땐 정말 머릿속에 온통 자전 거뿐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잡지사를 그만두었을 때

한동안 자전거가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전거에 영영 되찾아오지 못할 얼마의 마음을 태워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는 내게 사회 초년생 시절, 가장 서툴렀지만 가장 뜨겁게, 가장 재밌어서 일하던 시절이다.

자전거는 내게 그 시절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고, 그 시절 건강하던 나의 몸이고, 그 시절 해맑았던 나의 열정이다.

오늘은 어쩐지 자전거를 타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면서, 오래전 자전거를 타며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절 나를 떠올렸다.

한 때는 밉고 화나던 들도 많았는데, 어느새 그런 것들은 다 흩어져버리고, 좋고 그리운 것들만 남아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오늘,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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