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 said
십 년 전에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처럼…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는 토익 토플을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이력서 한 통 쓴 적 없었지만, 이상하게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장래희망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듣기 시작한 이래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되고 싶은 직업을 단 하나로만 정해 두었던 탓에 또 다른 가능성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한가지 답에만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심지어 무턱대고 이 회사 저 회사에 이력서를 넣는 친구들을 보면 약간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저렇게 꿈이 없나?’라는 근본 없는 우월감을 느끼며,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되고 싶은 직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에 대한 허세도 부렸었다.
구체적 계획이나 노력 따윈 없이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었고 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노희경 같은 드라마도 쓰고 싶었고, 박찬욱 같은 시나리오도 쓰고 싶었다. 박민규 같은 소설가가 돼도 좋을 것 같았다. 멋진 연극 한 편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냥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애매한 꿈을 품었다는 것에만 도취되어, 게으르기만 했다. 무식하니 당당했다.
아름 said
십 년 전의 나는 대학교 3학년,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 그렇게 열심이던 댄스 동아리 활동 막바지로, 방학 때는 중국 교환 학생과 뉴질랜드 어학원 연수를 다녀왔고, 연애하느라 바빴다. 졸업 후에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춤 추고, 노래 하길 좋아했지만 밥벌이 할 만한 재능은 아닌 것 같다, 어쩌지? 친구들은 하나 둘 고시 공부를 하고, 자격증 준비를 하고, 유학을 떠났다. 나는 기약도 없이 몇 년씩 공부할 자신도, 여유도 없었다. 준비 없이 들이닥친 대학교 4학년, 나는 불안한 취업 준비생이 됐다. 하고 싶은 건 없었고, 돈을 벌어야 했다. 높은 학점, 토익 점수, 인턴 경력, 봉사활동 경험, 심지어 HSK 등급 조차 없는 無 스펙의 나는 여름 방학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청춘을 불사르며 현실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막 학기에는 조급한 마음에 무조건 바쁘게 지냈다. 우울한 취준 시기를 지나서 거짓말처럼 장학생도 되고, 원하던 대로 취업이 됐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평범한 대학생이 벼락치기로 운 좋게 풀린 케이스,
그런 경우다.
** 독립출판물 <나는 네가 부럽다>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