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 said
삶에 있어 편안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초라하다.
이제껏 십 만원이 넘는 옷을 사는 사치를 부려본 적이 거의 없는데도 넉넉한 생활을 해본 적이 별로 없고, 그렇다고 모아놓은 돈도 없다. 올해 환갑을 맞은 부모님에게 그럴듯한 선물하나 사드리지 못했을 때, 내가 그간 왜 더 돈을 버는 일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한없이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산다. 그래서 그 세계를 견디는 나름의 평정심을 몸에 익혀갔다. 당장 다음 달이면 지금 하는 프리랜서 일이 끊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늘 시달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믿고 있으며, 내 이름을 건 소설책을 내겠다는 꿈을 유효하게 품고 있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채, 야생에 던져진 프리랜서 일이 나에게 있어 좀 더 넒은 세상을 보여 준 듯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좁은 인간관계와 세계만을 경험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울타리를 쳤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겨우 찾았다고 생각한 편안함이 겁쟁이가 만든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아닐지, 그 울타리를 나만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는 사실 잘 판단이 안 된다.
아름 said
나는 일을 하며 독해졌다.
원래 불합리한 일에도 목소리를 잘 못 냈다. 안면이 없는 사람에게 말하는 게 불편했다. 지금도 음식 배달 전화 하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가만히 있으면 호구가 된다. 모두 일을 나에게 미루고, 내 책임으로 전가한다. 어느 싸움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나마 모든 게 짬밥 싸움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는 부분은 있다. 그래도 조용히 있으면 당돌한 후배들에게 뒤집어 쓰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불만제기를 잘한다. 이제는 너무 잘하는가 싶기도 하다. 나이 들면서 얼굴이 두꺼워진 것도 있겠지. 아무튼 원래도 좀 냉정한 편인데, 더 매정해 졌다.
** 독립출판물 <나는 네가 부럽다>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