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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Feb 25. 2019

섬에서 보낸 11일 (1)

첫걸음, 시작은 나오시마

2018년 가을, 다카마쓰행 비행기표를 예약해버렸다.

정확하게 '예약했다'가 아닌 '해 버렸다'가 맞다.

아마도 새벽 두어 시 즘, 우리는 이런저런 사정들로 가득한 어제에 침울해 있었고 내일을 기대하게 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오늘을 견디기 위해 무작정 비행기표를 사 버렸다.

그리고 2018년 12월, 비행기표를 사버린 날의 기억이 아득해질 무렵, 다카마쓰로 떠났다.

 


다카마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오시마로 향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나오시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쇠태 해가는 섬을 아트 프로젝트로 다시 부흥시켰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오시마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부터, 그 섬은 나의 로망이 되었다.

예술작품으로 가득한 섬이라니, 어쩐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신비의 이미지였다. 그곳은 보통의 삶과는 너무 멀고 아득한 미지의 공간처럼 느껴졌기에 더 아름다운 듯 보였고 그 섬에 서있는 나의 모습을 감히 상상해 보기 어려웠기에 오히려 더 가보고 싶었다.

언제나 나에게서 먼 것들은 아름다워 보이니까.



우리가 도착한 월요일에는 나오시마의 대부분의 가게와 미술관들이 휴일이었다. 숙소에 간단히 짐을 풀고 동네 구경을 나섰는데, 정말 밥을 사 먹을 곳이 없었다. 만나는 모든 식당은 문을 닫았거나 쉬는 시간이었다. 굶주린 배로 이리저리 섬을 헤매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쳤던 편의점이 계속 생각났다.

"그래도 첫 낀데 여기서 뭘 먹긴 좀 아쉽잖아. 정 갈 데 없으면 다른 편의점은 또 있을 테니까."라며 넘겼는데,

이 작은 섬에 두 번째 편의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다음을 기약하며 놓친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배워간다.

다행히 한참을 걸어가다 슈퍼마켓을 만났다. 도시락을 사들고 마땅히 먹을 곳이 없어 근처 도로변에 대충 앉았다. 길바닥에 앉아 오니기리와 가라아게를 먹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휴일이라 갈 곳이 없는 상태가 꽤 마음에 들었다.

세상의 흐름에서 약간 빗겨 선듯한, 경쟁할 필요 없는, 애쓰지 않아도 좋은 이 낯선 공간에서의 무료함이 마음에 들었다. 차도 사람도 만나지 않는 섬의 도로와 골목을 누비는 동안, 어떤 소감도 어떤 고민도 없이 그저 좋다는 마음만 들었다.


카페 사진을 따로 찍은 것이 없어서, 구글맵에서 가져온 ミカヅキショウテン (Mikazukishoten) 전경  

그래도 유일하게 문을 연 카페가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안에 들어섰다.

오늘은 카페라테가 맛있다는 주인장의 추천을 받고 주문을 마친 후, 가게 한편에 마련된 벤치형의 의자에 앉았다. 넓지 않은 가게 안에는 별다른 테이블은 없이 주방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게의 커피콩 로고가 그려진 옷이나 가방 같은 여러 가지 굿즈들이 꽤 많았는데, 주인장이 카페를 운영하기 전에 패션업계에서 디자이너나 유통 등 꽤 오래 일했고 직접 만들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작은 가게 안에 주인장의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커피가 정말 맛있어요"라고 말했더니

"자신 있었거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이 참 기분 좋았다.

나는 내 일에 대해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카페의 주인장은 이제 곧 해가 질 시간이니 얼른 바닷가에 가서 석양을 보라고 말해주었다.

해가 지는 모습은 나오시마의 큰 자랑이라고 놓치지 말라고.

그 말은 과장이 전혀 없었다.

해 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란 생각에 웃음이 났다.

아침까지는 서울이었는데, 저녁에는 나오시마의 바다를 보고 있다니...

사치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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