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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Oct 04. 2016

건너보면 알게 될 거야  

잠수교에 대한 단상


잠수교는

일종의 심리적인 분기점이었다. 집 근처 홍제천에서 타기 시작한 자전거가 잠수교 북단 즘에 도착하면 이제부터는 일터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긴장감이 손목을 타고 턱 끝까지 전해졌다. 이 다리만 건너면 삼성동 사무실까지 가는 길의 절반 이상은 왔다는 생각에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자전거 잡지사에서 일하며 유독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화보나 인터뷰 관련 사진을 찍을 일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잠수교 북단의 한강 반포지구 일대는 단골 촬영지였으니 나에게는 ‘일터’라는 느낌이 강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잠수교 북단에서 남단까지

처음 자전거를 타고 건넜을 때가 스물일곱 살 무렵이었다. 정규직으로서는 처음 일하게 된 자전거 잡지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간 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경계에서 강남은 늘 배제되어 있었다. 굳이 강을 넘지 않아도 먹고 살기 불편하지 않으니 살고 있는 서대문구와 그 주변 동네들만을 맴돌며 서울을 살았고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삼성동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처음으로 겪게 된 강남 살이는 나로서는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제법 큰 한 걸음이었다.

분명 회사를 다니기 전에도 잠수교를 건넌 적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그곳에 내려본 적은 없었다. 그저 차를 타고 지나는 과정에 차장 밖 풍경으로만 만났던 저 너머의 공간이었다. 그러다 자전거로 밥을 벌어먹고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날 것의 잠수교와 대면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맨 몸으로 느끼게 된 잠수교, 그리고 한강의 모습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바로 위에 놓인 반포대교 때문에 늘 그늘이 져 있는 잠수교는 볕이 좋은 날은 양 옆으로 반짝이는 한강의 살결이 그대로 보이며 제법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은 느낌이랄까.


잠수교는

초입에서 중앙으로 갈수록 언덕을 이루다가 다시 내리막을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중간 언덕에서 힘이 달려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는 일이 없게 하려면 일단 초입부터 속도를 붙여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 나름의 다리를 건너는 방법이다. 가속도를 붙이며 달려야지만 언덕을 마주해도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무사히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수교의 경사가 아주 급한 편은 아니지만 넋 놓고 달리다가는 막상 그 앞에 섰을 때 뒤로 밀리거나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야 되기 일쑤인 곳이다. 그래서 잠수교를 앞에 두면 나는 항상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사뭇 진지한 의지를 다지게 되곤 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렇게 잠수교 언덕을 넘을 때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것 같다. 매번 눈 앞에 놓인 언덕을 넘기 위해 전력질주할 준비를 해 두었다. 중간에 머뭇거리면 언덕을 못 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 빨리 달리려고 애썼다. 가끔 다른 라이더들을 앞지를 때면 그 경쟁과 극복의 쾌감을 동력으로 삼아 더 빨리 달리려 안달했던 것 같다.


같은

잠수교지만 어디에서부터 보기 시작하는지에 따라 사뭇 다른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북단에서 남단을 넘어올 때는 일이 시작된다는 긴장과 설렘이 있었고, 남단에서 북단을 넘어올 때는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이 들곤 했다. 남쪽을 향할 때의 내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멋지게 살아 나리라 다짐하는 의기충천한 모습이었다면 반대의 길을 돌아오는 나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긴장 풀린 전사와 같은 모습이었달까. 그래서인지 남단에서 북단을 넘어 집으로 올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 한 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터벅터벅 걸어갈 때가 많았다. 그 길에서 의미를 알 수 없이 둥둥 떠 있는 은색 건물들을 보면서 누군가를 욕하기도 했고 아주 가깝게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한강을 응시하고 나면 다시 페달을 돌리고픈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잠수교는 바짝 용기를 내었다가도 쉽게 좌절하고, 그러다가 또 훌훌 털고 또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하던 나의 모든 회살이, 그리고 강남이를 온전히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슬플 때 힙합을 춘다고 했지만 나는 슬플 때 한강을 자전거로 달렸고 잠수교에 멈춰 한강을 바라보았다.  


자전거로

밥 벌어먹고살던 시절에는 한강 자전거 도로, 그리고 그 길 가운데에 잠수교가 애증의 동료처럼 느껴진 적도 많았다. 직장에서 느끼는 일 적인 성취와 먹고살기 위해 참아야 하는 분노의 하루 업무가 동전의 앞뒤처럼 맞닿아 있듯이,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자전거로 먹고살아야 하는 피로감 또한 한 끝 차이로 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며 강남과 강북의 경계를 넘었고, 일하는 나와 일하기 싫은 나 사이의 고민도 잠시 잊곤 했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밤에 달리는 한강 자전거 도로는 대단히 멋진 삶의 망각을 불러일으키며 그저 ‘달리는 나’에게만 집중해 모든 상념을 잊게 해 주었다.  


더 이상

자전거를 일로 삼지 않는 요즘에도 종종 자전거로 잠수교를 건넌다. 잠수교 남단의 광장에서 쉬고 있자면 땡볕에도 아랑곳 않고 그곳을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던 강남살이의 순간들이 되살아 난다. 뒤돌아보니 그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전거가 내게 알려준 것은 잠수교라는 울기 좋은 공간과 한강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는 짜릿함 뿐이 아니었다. 자전거는 나에게 밥벌이의 어려움을 최초로 몸에 새겨 준 스승이었고, 내가 쓴 글을 처음으로 세상에 보이게 한 뮤즈였다. 그러고 보면 자전거를 타고 잠수교를 처음으로 건너던 날에 나의 진짜 세상살이가 시작되었다.




매거진 <문화+서울> vol.91 2014.09 에 실었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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