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다 뻥이야
타인의 슬픔에 위로와 충고를 건네긴 쉽지만, 내 것이 아닌 기쁨에 축하와 동조를 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는 위로받기보다 하는 입장이 되고 싶다. 어른인 척, 자비로운 척, 담담한 척,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우월한 위치에 서고 싶다.
하지만 막상 살다 보면 그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위로받고 도움받는 입장, 열등감을 느끼는 입장에 언제나 너무 쉽게 나의 몫이 되어버린다. 가끔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여유롭고 행복한 것 같아 불안해 견딜 수 없다.
얼마 전 우연히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의 연봉을 듣게 되었다. 프리랜서인 내가 버는 돈의 서너 배는 족히 되는 월급을 수년째 받아 왔고 앞으로도 그 차이는 점점 커질 거라 생각하니, 자연스레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일상이 새삼스레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한 번씩 ‘남들 버는 이야기’를 들으면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세요’라는 조언은 듣기에는 좋으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되세요’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렇게 되는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를 사랑하다가도 금세 또 미워하고 얕보는 일을 반복한다.
SNS 속 정사각형 사진의 사람들은 늘 이국의 풍경 속에서 패셔너블한 차림으로 근심 없는 미소를 짓고 서 있다. 뭐든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에 대해 하나도 절박하지 않은 듯한 순수한 모습에 때때로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도무지 가질 수 없을 듯한 재력, 미모, 여유, 남편, 재능 기타 등등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언제나 행복은 남의 SNS에만 가득하다.
업로드되는 사진들 속에는 허영과 과장이 적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예쁜 모습을 하고 좋은 곳에 가서 찍은 남의 사진에 홀린 듯 몰입하고 만다. 그러다 잠시 스마트폰이 꺼졌을 때, 검은 화면에 비치는 나의 멍한 모습은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아 눈을 질끈 감는다. 고작 남의 사생활을 염탐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꼴이라니.
다녀온 지 한참 지난 일본 여행 사진 한 장을 SNS에 업데이트한다. 얼마 안 돼 친구 한 명이 댓글을 단다. “맨날 좋은 곳만 가네, 좋겠다.” 회사원인 그녀는 내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며 유유자적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사는 것 같아 늘 부럽다고 말한다. 불행한 순간을 찍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은 대개 행복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행복하다고 착각한다. 우리 중 과연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행복하면 좋겠다. 이왕 이면 너보다 내가 조금 더.
“그러니까, SNS에 속지 마, 다 뻥이야. 사실 난 그냥 누워있어. 그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