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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형균 Apr 07. 2023

화보다는 용서

용서는 친구를 얻을 기회

누군가 내게 실수를 했다면 그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할 좋은 기회이다. 그를 내 팬(fan)이자 우군(友軍)으로 만들 좋은 기회이다. 다만 너그러운 용서(容恕)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가 실수를 한 건 이미 일어난 일이고 엎질러진 물이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그 일을 바꿀 순 없다. 다만 그의 실수에 대한 내 반응은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누군가 내게 피해를 주는 실수를 하면, 그것도 내 잘못은 전혀 없고 순전히 상대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고 클수록 화를 내기 쉽다.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화를 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내 스트레스를 조금 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마저도 나중에 후회와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화(火)는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공덕(功德)도 태워버린다. 그 사람에게 여태 잘해줘서 쌓은 공덕이 화를 내는 한 순간에 타서 없어져버린다. 화를 내면 먼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내 품위가 떨어진다. 내 자존감도 떨어진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보는 이미지도 나빠진다.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쿨하게 용서하면 상대는 나를 과거와 달리 다시 본다. 사람은 누구나 용서받길 원한다. 화를 내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용서를 받으면 감동(感動)이 되고 감화(感化)가 된다. 화(化)는 바뀐다는 뜻이다. 나에 대한 이미지가, 감정(感情)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상대의 실수를 용서하는 건 상대의 나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좋은 기회이자 관계를 좋게 할 좋은 기회이다.
용서(容恕)의 서(恕)의 한자는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이 결합되어 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즉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과 같이 한다는 뜻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상대는 내가 화를 내기보단 용서해 주길 바란다. 그 마음과 같이 하여 화를 내지 않고 용서해 주면 된다. 그러면 한 마음이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절호의 기회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거짓 용서를 하면 안 된다. 상대도 안다. 순수하게 상대 마음 편하게, 내 마음 편하게 용서해야 한다. 사실 용서는 상대보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거다. 마음 편한 게 최고다.

남은 잘 용서하면서 나 자신은 잘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자신에게 엄격한 건 좋지만 용서하지 않는 건 좋지 않다. 자신의 마음도 헤아려서 야단치기보단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을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차분히 시간을 갖고 자신과 대화를 해보면 의외의 숨겨진 마음과 사정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억눌린 욕구도 있고 마음 짠한 속사정도 듣게 될 때가 있다. 남을 연민하고 동정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눈길을 주고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어두운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다. 그 방문을 열고 불을 켜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자.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주고 안아주자. 미처 몰랐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치유해 주자.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자. 더 이상 아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자.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널 보살펴주고 지켜주겠다고 말해주자.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적임자는 자신이다. 내가 가장 오래 나와 같이 살아왔고 모든 경험을 같이 해서 잘 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가장 잘 모를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조선 말 선비 유한준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면 알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한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사랑이 부족해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용서도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하면 다 이해되고, 이해하면 용서 못할 게 없다. 길지 않은 인생, 사랑하며 살자. 남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모든 사랑의 출발점은 나에 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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