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형균 Apr 13. 2023

외롭지 않을 방법

나 자신과의 대화

요즘 부쩍 나와의 대화가 늘었다. 그 산물이 페이스북과 브런치에도 자주 실리고 있다. 모두 내 생각의 결과물들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 "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애초에 '방법서설'에서 이 명제를 프랑스어로 썼지만; "Je pense, donc je suis", 라틴어로 된 명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가 떠오른다. 내가 생각한다는 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인간 존재(Dasein; '현존재')는 다른 존재와 달리 소통을 한다. 소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에서 특별한 방법은 언어이다. 나와의 소통을 글로 남겨놓는 건 의미가 있다. 내 안의 수많은 또 다른 나와 소통하기 위해 대화를 하면서, 지금 글을 적고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자아를 존중하고 배려함이 필요하다. 이 같은 훈련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대화에서도 적용될 것이다.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과 소통해야 한다. 내가 내 안의 다른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적용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 먼저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고 인간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이고 주된 소통 방법이 대화이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20년 전 서울로 직장을 옮겼을 때 내게 정신분석을 가르쳐주시고 내 정신분석을 해주셨던 故 소암 이동식 선배님(도정신치료; 道精神治療를 창시하신 前 한국정신치료학회장)께서 내 정신분석을 해주시면서 "자신과 대화가 잘 되면 외롭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난다. 외로움은 관계의 단절로 인한다. 나 자신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지 않으면 외롭지 않다. 부부관계에서도 대화가 얼마나 있냐가 중요하듯이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대화가 중요하다. 나 자신과 대화가 많아서 그런지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孤獨, solitude)은 같은 말로 혼용되지만 철학적으로는 다른 개념이다. 외로움은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소외'를, 고독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발적인 자기 격리'를 의미한다. 독일 출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외로움을 '혼자 있는 고통'으로, 고독을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 정의했다. 미국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 설리번(Herbert Harry Stack Sullivan)은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외로움으로,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고독으로 구분했다. 요즘 나는 고독하긴 하지만 외롭진 않다. 고독을 스스로 즐기고 있다. 고독은 여러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깨달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사색을 많이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요즘은 사회활동도 많아졌고 모임도 많아졌다. 최근 모임을 가서 달라진 점은 과거엔 주로 내 얘기를 많이 했다면 지금은 듣는 걸 많이 한다. 상대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말하는 것보단 듣는 것이 상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많이 듣고 말하는 건 핵심만 간결하게 한다. 그것이 communication에 더 효율적이라 느낀다. 나 자신과의 대화에서도 그러려고 노력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들의 말을 많이 듣고 이해하려 한다. 결국 완전한 이해는 사랑할 때 가능하다.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내가 상대를 먼저 사랑하면 상대도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남을 사랑하기 앞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안의 사랑이 충만해서 넘칠 때 남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다. 내가 날 사랑해야 남도 날 사랑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아를 배려함은 이기적인 행위일까 아니면 이타적인 행위일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만이 자신이고 내 안의 다른 자아는 아니라면 이타적인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다른 자아도 엄연히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이기적인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하는 것이 나도 위하는 것이다. 또한 나를 위하는 것이 남도 위하는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위기는 기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