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중학생들 대상 진로 강의에서도 빠지지 않고 언급해 왔다.
우스갯소리로 어느 문과생이 포스트잇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적어서 붙이자, 어느 이과생이 "속도는 속력과 방향을 합친 벡터값입니다. '방향'을 이미 내포하고 있죠. '속력'으로 고쳐야 합니다."라고 포스트잇에 적어 그 아래에 붙였다는 말이 있다. ^^
맞는 말이다.
방향을 따로 언급하고 있다면 속력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방향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면 속도란 말이 알맞다.
속도든 속력이든 스피드(speed; 흔히 '속도'로 번역되지만 물리학에서는 '속력'을 일컫는 말이다.)도 중요하다는 걸 요즘 절실히 느낀다.
바로 집안 정리정돈을 가사도우미 없이 혼자 하면서 느끼고 있다. 요리 등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집을 어지럽히게 된다. 그날 어질러진 것만 치워도 바깥일을 하면서 해내기가 빠듯한데 이사 온 후 이사업체가 바빠서 아무렇게나 놓고 간 것들 정리정돈을 같이 하려니 시간이 부족하다. 강의 준비와 세미나, 공부 모임, 친목 모임, 운동과 명상 및 색소폰 클래스, 친구와 만남, 독서, 서점에서 책 사기, 장보기 등을 병행하다 보면 그냥 일상적인 집안일만 해도 시간이 빠듯한데 이사 후의 정리정돈을 같이 하려니 힘들다. '이때 필요한 건 뭐?' 유명한 광고 카피에도 나왔듯이 바로 '스피드'다. 치우는 스피드가 어지럽히는 스피드보다 커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부채가 늘어간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스피드를 높이는 원동력은 '관심'과 '열정'이다. 집안일은 요리 외에는 원래 소질도 관심도 없고 적성에 맞지 않지만, 지금 상황은 생존을 위해 적성과 상관없이 성과(high output)가 필요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며칠 전 정리를 하면서 발견된 정리정돈에 관련된 책들이 생각났다. 짧은 시간이라도 그 책들을 섭렵한 후 정리정돈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생각인지는 나중에 알 수 있을 텐데 그 결과가 나도 궁금하다. 스피드에는 효율이 중요하므로 그 책들은 내게 정리정돈의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효율을 높여줄 것이다. 이틀 전 면접 본 가사도우미 지원자는 내게 정리정돈을 혼자 하지 말고 전문업체에 의뢰할 것을 권했다.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결국 난 나 혼자 하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도 가사도우미가 이사 후 정리정돈을 해주면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찾기 일쑤였다. 내가 물건을 어디에 모아두었는지를 알면 찾을 필요가 없다. 버릴 것과 남길 것만 분류해 주면 정리정돈업체에서 알아서 다 해 준다지만 잡동사니가 섞인 박스에서 그런 분류를 하는 자체가 시간이 걸린다. 결국 모든 걸 내가 하기로 결정을 했고, 어느 정도 내 손에서 정리정돈을 마친 후 전문업체에는 추후 컨설팅을 받아볼 생각이다. 내가 욕심에 산 불필요한 물건들과 내가 사놓고 애정을 쏟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물건들은 버리거나 임자를 찾아 떠나보내야 한다. 그 고통의 씨앗은 내가 뿌린 것이기에 돈을 주고 남에게 전가할 순 없다. 자업자득, 결자해지. 모르긴 해도 어느 정도 내 손으로 정리정돈이 끝나면 그걸 잘 유지해 줄 사람이 나타나리라 본다. 인생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하려 해서도 안 되지만, 이번 정리정돈은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기도 하고 트레이닝 과정이기도 하다. 운동선수들이 평소 모래주머니를 달고 훈련하다가 시합 땐 모래주머니를 떼면 쉽게 경기를 할 수 있듯이 나도 그럴 것이다. 내 손으로 정리정돈이 잘 된 집에 새로운 가사도우미가 와서 유지를 잘해주면 그 시간에 나는 다른 고부가가치의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일요일 일직당직을 하시러 요양병원에 출근하셨다. 나는 집에서 집안일 당직을 하고 있다. 내가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요즘 부쩍 글을 많이 올리는 건 집 정리정돈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져서이기도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목전에 두고 다른 곳으로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기 싫은 일일수록 빨리 스피디하게 해치우자. 글을 적다 보니 배가 고프다. 밥부터 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