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의 빛글 Aug 26. 2021

사주 재성, 관성 없이 살아가는 법

스트레스는 회복하면 강해진다


'강한 스트레스를 회복해야만 더 강해진다'

무너질 것인가? 버틸 것인가? 더 나아질 것인가?





'나한테 이건 꼭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다.

돈, 집, 명예, 자녀의 성취 등이 아니다.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있다.

아니.. 나한테 있었으면 좋겠다기 보다, 받고 싶은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사랑'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을 한다. 그래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타고난 본성에 '사랑', '공감'같은 것을 갖고 태어나서 그런지....

상담이나 코칭...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나에게 아주 쉬운일이다.



내 주변에는 내가 사랑해줘야 할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충분히 마음을 다해 그들을 만난다.

그렇다고, 에너지 소진이 될 만큼 나를 혹사시키지 않는다.

오늘 내가 그들을 감당하기 버거우면, 인원을 제한하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 '사랑'을 원한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받은 사랑이 부족하여 고갈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는 것은 잘 하고 있으니, 받아봤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대한다.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남친이라도 있으면 의지가 되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니, 사람이 나를 사랑해줘야 하지 않는가? '

'왜 나에게는 사랑받을 자격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 '

기도하면서, '하나님 정말 너무 하세요~~ '라고 할 때가 있다.

'나도 받아야지, 이겨내죠~~ '

하면서.. 말이다.




사주에는 재성과 관성이라고 하는 육신관계가 있다.

사회는 재성과 관성이 주도한다. 그래서 자기 사주에 재성과 관성이 있으면 사회에서 주도적인 인물이 되고, 사회의 누군가가 자기를 써준다. 자기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재성과 관성을 둘다 갖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알아봐준다는 얘기다. 그러니, 늘 할일이 있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 역시, 재성과 관성이 있어야 모아지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역할도 재성과 관성이 둘 다 있어야 외조, 내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관'이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꼭 이래야 하는거야?

너무 심하잖아?

하고 투덜거리게 된다.


사주에 인성이라는 것이 '권리'이다. 관성과 인성으로 책임을 다하고 권리를 찾는 것이다. 인성이 있어야 내가 사랑을 받는다고 느낄 뿐 아니라,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성도 편인으로 아주 약하다. 게다가 작은 인성을 남하고 나누어야 한다. 작은 인성하나를 갖고 몇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관성으로 인성을 채우든, 재성으로 관성을 채워줘야 뭔가를 이룰텐데...  

이러다 소진만 되겠다!!


인성을 채우는 건 '공부'하는 것이다.

'관성'을 채우는 건 명예와 일을 얻고 사회 조직에 소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관성이 없으면 명예와 일, 사회조직에 속하고자 해도 지속적이지 못하게 된다.


사람 사주에 재성과 관성 하나만 봐도... 이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있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재성과 관성이 잘 되어 있고,  대운에서 관성이 40년동안 맞이한 인성 과다인 사람이 내게 물었다.

"사람은 꼭 이게 있으면 다른 게 더 있었으면 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집을 이사하고 나니까 인테리어하고 싶고 인테리어 해 놓으니까 또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그렇죠~ 사람은 만족이 없는 것 같아요!"

"아니요.. 전 그렇게 바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미리 포기한 걸까?

이미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꿈보다 먼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많은 좌절 속에서 얻어지는 게 내 것이 아니고 결국 내가 소유할 게 없다고 체념해서일까??


재성 관성 인성이 균형있는 지인이 내게 말한다.

내가 한번도 뭔가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져본 적 없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없고, 뭘 가져야된다는 생각을 안한다면서.. 만약 가져본 적 있다면그게 좋은 지 알 것이라면서... 그러기 때문에, 더 가질려고 할것이라고..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거죠. 그게 뭔지 모르니까. 상상을 해본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단정지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가정도, 큰 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 내 강점을 잘 살려볼까? 실패의 경험과 좌절이 연속이라도 일어나 볼 생각을 한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게 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얼마나 잘 견디며 회복하느냐이다.

사주에도 균형이 잘 맞추어진 사람들은 회복탄력성이 좋다.

육신의 삼각형 구조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육신의 생화하고 제화하는 생극제화가 아주 잘 되어 있다는 얘기다. (사주를 모르는 사람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육신이라고 하는 인간관계 방법론, 사회생활적응력이 아주 순조롭게 잘 짜여져 있다는 말이다. 승승한다는 얘기다. 수준이 올라간다는 얘기다.)




수십년 전 병아리 대상으로 실험을 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물윤리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끔찍한 실험이긴 하다. 병아리 스트레스 실험이다.

A군 병아리는 꼼짝 못하게 고정해서, 투쟁-도피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동결반응을 유도한 뒤,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동결상태에서 회복하였다.

B군 병아리도 꼼짝 못하게 해놓고,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투쟁-도피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동결반응을 유도한 뒤, 연구자들이 가슴을 쿡쿡 찔러 다시 각성시켰다.

C군 병아리는 동결도 회복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병아리들을 익사할 때까지 물탱크에 집어넣고 기다렸다.

B군 병아리가 가장 빨리 죽었다. 다음은 C군 병아리가 죽었고, A군 병아리가 가장 늦게 죽었다.

A군 병아리들이 가장 오래 헤엄쳤다.

동결은 스트레스를 준 것이며, A군 병아리는 스트레스 후 그냥 놔두었기 때문에 스트레스에서 회복한 집단이고, B군은 스트레스를 주었는데, 스트레스가 회복되기도 전에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다. C군은 스트레스도 회복도 경험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심한 동결을 경험한 후 효과적인 회복을 거친 경우에 '인내'가 커졌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회복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인내의 힘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또 스트레스에 각성되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봐도 너무 당연한 얘기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버티면 이긴다는 말도 그런 맥락이겠지.. ..


사주의 육신의 생화와 제화가 되어 있거나 설화와 합화가 되어 있다면, 스트레스를 회복한 사람이고, 그게 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는다. 버티는 것도 힘이 드는 것이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고, 그런 스트레스를 회복하기도 전에 또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렇게 스트레스에 각성이 되다보니 예민해진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다. 버티는 것이 쉽지 않고, 좌절되는 순간을 좀 더 많이 맞이 하지만, 그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나는 그 스트레스 덕분에 2014년에 '스트레스파워'라는 책도 출간했었고, 박사학위논문도 청소년스트레스상담에 대한 주제를 연구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이겨내야 한다.

지금 겪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면, 훨씬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의 뇌인 변연계와 편도체는 무의식적으로 기능하고 생존에 관련한다. 이 생존의 뇌가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작은 스트레스도 위험하다 생각하고 '이제 나는 죽겠구나... '할 것이지만, 스트레스를 완전히 회복한다면 생존의 뇌가 '아... 안죽었구나.. 이정도 별거 아니었구나.. '하고 다음엔 좀 더 인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만 싸고 그 틈바구니로 들어가지 말고,

취미생활, 운동, 명상, 맛사지, 자기성찰, 독서, 수다나 상담, 스트레스를 감해주는 식단 등 스트레스를 회복할 시간을 주자.

치명적인 트라우마나 외상은 '플래시백' 안좋았던 사건으로.. 다시 돌아게 할 수는 없다. 수용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정신분석은 그다지 좋지 않다. 과거의 기쁜 감정을 떠올리도록 하게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자주 떠오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감정적 원인이 있다면, 위와 같은 주의분산적인 방법은 일시방편이 될 뿐, 생존뇌가 감지하고 있는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 때는 자기 분석을 통해 자신을 충분히 수용하고, 진정으로 자기를 믿고 온전히 받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누구'가 내 사주에는 없다.

내 사주에 없는 관성을 만드는 건 어렵다보니, 약한 인성을 더 많이 보충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더 간절히 다가가고 있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주에 재성이나 관성이 하나라도 없으면, 재성이나 관성을 만나도 쓸모없거나, 잘못되거나 부실한 재성이나 관성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났으나, 선택은 자유다.

사주에 재성과 관성이 없는 사람이 그것을 좋게 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일 것이다. 대운에서 40년 정도는 재성과 관성이 와 줘야.. 완전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10년 20년 대운에서 재성과 관성이 온다고 해서 유지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관성이나 재성은 외부의 것이기 때문에,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을 내가 다룰 수 있으려면, 재성과 관성이 둘다 있을 때다.

사주에 관성과 재성이 없다면, 내가 다룰 수 있는 인성과 식상으로 나를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의지한다. 하나님은 고통을 그냥 주지 않으신다. 나를 더 강하게 하려 하심이다. 하물며 인간이 만들어진 것도.. 그러하듯..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이기면 더 강해진다. 그리고, 더한 도전을 받아들이고, 도전이 즐거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리학/탄생코드심리]육신 기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