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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의 빛글 Sep 11. 2021

셀프영성치유:인간 재창조(선이 답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이 나의 중심에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에 에너지를 집중시킬수록 안좋은 기억은 더 강해진다.        




나의 우울감. 타고난 기질적 우울.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 독립과 자립을 포기하고 의존하고자 관계를 만들지만, 어그러진 관계들. 아무리 초연해도 정말 깨지지 않는 한가지!!! 대접받지 못하고 결과가 없고 잘못된 노력을 하고도 노력했다고 잘했다고 억울해하고. 비교하고 질투하는 나. 나도 대접받으면서 살면 안되냐고 내 인생은 왜 그러냐고.. 이럴 걸 왜 태어나게 했냐고? 했던 그런 원망들...      

배신과 실패를 거듭하니 이 감정들이 쌓이고 더 강해졌다.


감정에는 '초감정'이라는 게 있다.      

감정을 일으킨 최초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 초감정이 감정을 지배한다.      

감정은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겪은 어떤 일들이 생각으로 기억되고 감정으로 기억된다. 그 때, 생각이 왜곡되면 감정도 왜곡되어 저장된다. 우리가 성숙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겪은 일들은 왜곡되어 저장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 그 때, 그 사건을 지옥같은 감정으로 저장하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지옥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지옥 같으면 지옥을 경험한다.

그러한 최초의 감정, 나에게 뿌리내려진 생각, 나의 세포와 골수에 채워져 있는 감정과 생각이 지옥이라면,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을 바꾸는데는 행동 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은 나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이 끌어들인 것이다.

환경 탓이고, 상황 탓이고, 타인 때문이라고 하고 싶지만,

양자물리학은 냉정하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양자물리학은 무형세계, 영적세계의 물리학이다.

모든 물리적인 것은 비물리적인 것에서 시작되고,    

우주만물은 연결되어 있는데, 내 감정의 주파수와 같은 것을 연결한다.   

        

이처럼, 내 삶의 결과는 내가 끌어들인 것이라고 명확히 인정하고 자각했을 때,

변화가 가능하다.


나는 깨달았지만, 여전히 나의 행동은 깨달은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나의 습의 힘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애썼다. 과거의 습이 나를 끌어당기도록 놓아둘 수 없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고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데, 더는 거기에 머물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원점이었다.

그래서 다시 정신 차려 본다.




50이라는 나이가 세상의 이치를 아는 나이라서 그런가??

하나님을 다시 만난 건 기적이다.  내가 그동안 나를 잘못 창조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창조해야 한다는 각성이 과거보다 더 강렬하게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과거의 나를 벗어나 나를 재창조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었다.

그리고, 성경과 영적지도자라 일컫는 사람들이 쓴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동안 내 안에 있는 악이 나를 길들였지만, 나는 차츰 벗어나고 있고     

고지를 향해 가고자 내가 배운 심리학과 기독교상담학과 동양철학 등을 바탕으로 셀프영성치유를 시작했다.


LIVE(살다)를 거꾸로 쓰면 EVIL(악하다)이다.

나는 선하고 좋은 것, 그러니까 빛(하나님=예수) 안에 거해야 하고, 어둠은 피해야 한다. 

내 안의 어둠의 본능이 아닌, 선한 본성을 깨워야 했다.

 

  

선한 본능을 가진 선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빛으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과 나의 주파수가 맞춰졌을 때, 빛으로 행동할 수 있다.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는 전세계 많은 사람들과 나는 연결되어 있으며, 조금이라도 어두어지면 그 파장 안에 들지 못하고 빛의 진동수에 나의 진동수를 맞출 수가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거의 습으로 가끔 어두어졌다.

 

그럴 때마다, 영혼육의 균형과 선한 관계 본성을 깨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 하신다.      


나의 내면의 감정이 하나님의 선함과 일치할 때, 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신에게서 나오듯, 신이 창조적이듯, 우리 역시도 창조적이다. 내 안에 하나님이 불어넣어 만드신 영이 있고, 성령이 오셔서 나를 다스리게 하며, 오만과 교만과 자만을 버리고, 내 안의 예수님의 능력을 믿기만 하면 창조력을 사용할 수 있다.      


영적 존재가 되어야 하고, 그렇다고 물질세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물질세계에 살고 있으며, 물질세계의 원칙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물질세계를 포기한다는 건 도피(회피)에 불과하다.


내 현실 세계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나는 당장 영적인 것에 목표를 두고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의 형편은 어떤 일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수입이 0인 달도 있었다. 그렇지만, 힘들어한다면 어리석은 과거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그런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최극단으로 빠진 그 삶 속에서 가장 잠재적인 힘, 창조의 힘을 믿었고, 내가 기꺼이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었다.

       

최악의 순간에 선한 행동이 나왔다. 이것이, 신이 원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성이 아닐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신다. 그리고, 신으로부터 받은 선함을 찾으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신과 가까워지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나는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하고 싶었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쓸데 없이 시간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 세상은 정말 수준 높은 가치에는 돈을 적게 지불하고, 수준 낮은 가치에 돈을 많이 지불한다. 실제로 수준높은 가치에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되어 있다. 목회자들은 돈을 적게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성문화사업은 돈을 많이 번다.

나 역시, 사회복지는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니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가가치 높은 일로 돈을 많이 벌어서 가난한 계층을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도와주면서 큰 아량을 베푸는 것마냥, 아주 오만하게 말이지...


그런데, 내가 아니면, 저들의 생명을 구할자가 없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물론,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사명자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사명자를 만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이미 때가 늦을 수도 있다.                

'나 아니면 누가 나처럼 저들을 돌봐줄 수 있겠나?'  이건 오만이 아니었다.  

    

성직자도 아니고, 자선가도 아니지만, 내 돈과 시간을 내가면서 전문적인 실력까지 갖춘 내 손길이 필요한 가난한 내담자를 돌보는 것은 보람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케어하고 상담한 내담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나는 나를 재창조한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큰 선의 파장을 만들 것이다.


행동하고 재창조한다.

더 크게 창조한다.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기를... 그리고 지속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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