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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의 빛글 Oct 15. 2021

하나님이 주시는 재정의 복

복주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돈의 축복을 받을까? 
하나님 일을 위해,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재정의 복을 받으려면, 

마음의 그릇을 바꾸어야 한다. 


내 마음이 구두쇠같은데, 어떻게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성경에 근거하여 구제해야 한다. 


시편 41편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라고 하셨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는  고아와 과부다. 성경은 직설적이기 보다 은유적 표현이다보니,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 물론, 진짜 가난한 자를 말하기도 한다. 일단, 구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전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없어서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은 내가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심는데 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받기만 하고 심지 않는다면, 복을 증식시킬 수 없다. 


어떤 목사님 간증을 들어보니, 월세방 살고 빚이 산더미같이 쌓여서 감당할 수 없음에도, 빚을 얻어 하늘에 심었다고 했다. 빚까지 내서 하늘에 심으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도.. 재정을 극복하기 위해 빚을 내어 하늘에 심었기 때문에, .... 그 분의 간증에 공감한다.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 자기보다 잘 살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흘려 보냈다고 했다. 성도들에게 빚까지 얻어서 헌금하고 십일조하고 흘려보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얘기에 십분 공감한다. 그것이 감사와 은혜로 사는 그 분의 그릇인 것이다. 물론, 그 이후 그 목사님은 재정의 복을 넘치도록 받았다고 했다. 그 목사님보다 잘 사는 분인데도 마음의 그릇이 적은 분에게 주고 흘려보낸 적도 있었다고 했다. 



시편 41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이 세상에서 복을 받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고린도후서 9장

10-11.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말씀에 근거해서 흘려보내는 것이 심는 것이다. 

내 맘에 내키어, 내 맘이 그러하여 내가 쓰고 싶고 주고 싶은 곳에 주는 것은 하늘에 심는 것이 아니다. 

내 기분에 도우며 자만해서 안된다. 기도하고... 행해야 한다. 



돈이 있고, 재산이 많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에 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러한 마음의 그릇을 보신다.

마음이 넉넉한 자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을 받고자 하는데, 심는 것은 아까워한다. 

쥐고 있으면 그것이 커지는 줄 안다. 


게다가, 하나님 일에 쓴 것도 아니면서 하나님께 갚아달라고 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갚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재정의 복을 열어주지 않으신다. 여건이 안되어 지금 돌려주지 못한 경우,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구약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정신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속건제로 하나님께 이것밖에 드리지 못함을 기도하고 예배 드려야 한다. 


마음이 넉넉한 자로 살기를 바란다. 





가끔 먹을 것을 보내주시는 분이 계신다. 

딱 한번 전화상담을 했던 것 뿐인데, 몇 년째 1년이에 몇 번씩... 고맙다며 

그 분이 사는 지역의 특산품을 보내주시곤 한다. 

어제도 연락이 왔다. 

고구마 한상자 택배로 보냈다고.. 

그 분이 넉넉한 형편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 분의 마음이 넉넉한 것이다. 

지난 추석에 사과도 보내주셨는데, 애기 머리 크기 만한 사과... .. 정말 맛있었다. 


주는 사람이 위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타인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신이 돈이 없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해져서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면 된다. 마음이고 몸이고 시간이고 돈이고 줄 수 있는 것을 주면, 나보다 더 가진 사람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많이 가져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이 넉넉한 자로 살게 하심에 감사할 뿐이다. 


넉넉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줄 수 있어서.. 

또한, 신분이나 계층으로 사람을 나누어 아래로 보지 않아야 한다. 그저 같은 사람인 것이다. 

다만, 줄 수 있어서 마음이 위에 있을 뿐이다. 


있을 때는 누구나 줄 수 있다. 

없을 때 줄 수 있는 것이 진짜 나눔이고,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신다. 

없을 때 움켜쥐고 싶더라도, 손을 놓아야 한다. 

사치하고 유흥비에 돈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돈을 심어보라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감사이듯..... 


주는 자는 자존감도 높아진다. 


높아지고 싶다면, 주라~~
주지 않으면서 낮아지고 있음에 한탄하지 마라. 




개인의 사익을 위해 쓰고자 하는데, 하나님이 채워주실 리가 없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이니 먹고 살 것은 주시겠지만... 재정의 복을 구하고자 한다면, 자기의 마음 그릇을 점검하라. 

과연, 나는 정직하게 일하며,  타인에게 상처준 적이 없는가?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는가? 


마귀는 인색함을 주고, 성령은 감동과 감사를 주신다. 


학개1장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거든, 


성전에 헌신하여야 한다. 

감사로 갚아야 한다. 

예배는 기도와 예물과 찬양이 함께 해야 한다. 






지난 2019년 12월에 법적으로 소송할 일이 있었고, 민사는 2020년 10월에 승소했으며, 형사는 2021년 7월에 승소했습니다. 그럼에도, 
승소 후 변제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 10월 말에 대여금 중 일부를 갚겠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저는 가난한 자를 상담했고, 목사님 일을 도왔고, 100일 기도를 3번 드렸습니다. 

물론, 그 사이 제 마음 안의 갈등이 있었음에 회개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과거처럼 살 수 없고, 저는 새로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일조 등 헌금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많은데, 저는 십일조 뿐 아니라, 월삭, 감사헌금, 성전건축헌금 등 해야한다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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