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대신 이대, 하나님의 은총
딸 아이 임신했을 때, 결심했던 것은 프린스턴대 같은 명문대 보내서 육아서 쓰는 엄마로 등극하기였다.
그래서, 아이의 태명은 '천재'로 불렀다.
냉장고 앞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김태희 고소영 사진을 붙여 놓았고, 마음으로는 '1미터 72'를 되내였다.
딸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외모는 김태희 고소영과는 다르지만, 도자기 피부 같다는 말을 듣는 아주 이쁜 여학생이다. 키는 1미터 73이다.
그리고, 엄마 체면 세워 줄 만한 곳에 들어갔다.
고대, 중앙대는 떨어졌지만,
이대랑 서울 시립대 붙어서 골라서 갈 수 있었다.
딸의 수험생 생활은 혹독했다.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가 감수해야 했던 힘든 생활, 그 아이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상처의 흔적이 나의 가슴을 후벼파면서 진행되었다.
딸은 너무나 지쳐있었지만, 끝까지 완주하려고 했고,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지칠 수 없었고, 지치지 않으려고 기도를 시작했다.
고1, 코로나로 인해 기숙사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곧, 2학년이 되는데, 뭐라도 해야 했다. 2020년 5월에 잃었던 내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이 아이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었다. 2020년 12월 3일부터 딸의 대학수능 고대 입학 기도를 시작했다. 일주일 단위로 봉헌 예물을 드렸다. 한 주도 빠짐 없이.
그리고, 2022년 12월 15일 이대 합격 통지 받은 날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했다.
고려대 발표가 가장 먼저였는데, 불합격이어서 좀 마음이 답답했지만, 다른 학교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가 가고 싶고, 적성에 잘 맞는 곳에 지원한 것이니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100퍼센트 합격시켜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내 입으로는 얘기했지만, 나는 계속 기도했고, 이대 발표 나기 전날은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교회에서 기도로 밤을 했고, 발표 나는 시각까지 의자에 앉아서 기도했다.
그리고, 카톡으로 영민이 이대 최초합격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100번 날려줬다.
딸에게 니가 다닐 학교니까, 지금 이대에 가보라고 했고 그 아이는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이대 교정을 밟았다. 딸은 그날 따라 엄마의 모든 말에 순종했다. 그리고, 이대 교정을 밟으며, 합격했다고 울면서 연락이 왔다.
학교 오는데, 눈이 너무 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며... 학교가 너무 이쁘다며... 엄마 고맙다며...
우리의 훈장을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새로운 시작임을 안다.
2학년 때부터는 기숙사에 머물러야 했기에, 서울에서 화성까지 매주 왕복해야 했다.
다른 사업을 해보려는 마음으로 새롭게 일해보려는 것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사기까지 당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아이들은 광주에서 안양에 있는 엄마에게 오느라 초등학교 때, 전학을 왔고, 몇 년 있다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겨우 안양에서 친구들과 안정되어 가는데, 중 3 겨울방학 때, 안양에서 불광동으로 이사를 했다. 은평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펼쳐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이 엄마의 경제적인 여건은 아이들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칠 수가 없었고, 딸은 지칠 수 밖에 없었다.
꼬박 2년 넘도록 서울 불광동에서 화성 삼괴고까지 매주 왕복했다.
매주 한번도 좋게 오고가는 적이 없었다. 딸은 힘들다고 왜 엄마 때문에 내가 이래야 하냐고 했고, 왜 불광동에 살아야 하냐고 했고, 안양으로 이사가면 안되냐고 했고, 왜 매주 교회에 가야 되느냐고 했다.
하나님은 무조건 믿어야 하고, 엄마가 돈을 많이 잃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 같으면 이해해줄 법도 한데.....'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건 엄마의 욕심이었다.
나는 그냥 딸에게 죄인이었다.
게다가, 딸아이는 간헐적 외사시로 아주 힘든 수험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술 시기도 놓친데다가, 갑자기 기면증처럼 아이가 3년 내내 잠에 취해 헤어나오질 못했다. 집에 머무는 주말동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거의 24시간 내내 잠을 자고, 주일은 교회 갔다가 기숙사 들어갈 때까지 잠을 잔다. 수업시간에도 졸립고, 방과후 자율학습시간에도 자기는 어느 새 잠이 들어 있다고 했다. 열심히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참 난감한 상태였을테고, 이 엄마 마음도 안타깝지만, 자신은 더더 힘들었을 것이다.
니가 아마 다른 애들처럼 공부를 했다면, 너는 프린스턴대, 아니... 서울대도 합격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며.... 자율학습 시간에 잠에서 깨어보면, 너무나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볼 때, 저 애들은 안졸리나? 왜 나만 이러지? 저 애들처럼 하면, 나도 정말 잘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차츰 그 아이는 자기 몸에 자기를 맞추어가기 시작했고, 자기 꿈을 축소시키기 시작했다.
합격 이후로 딸아이에 대한 기도 제목이 달라졌지만, 하나님께서 죽을 때까지 기도시킬 이유를 내게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음도 아프고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우리에게 딸의 이대 합격은 하나님의 은총이었다.